역대 정부마다 표류했던 자치경찰 전국 시행 초석 마련
역대 정부마다 표류했던 자치경찰 전국 시행 초석 마련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기철 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 지방분권 실현 넘어 선진 치안 모델 앞장
기업 산업기술과 영업비밀 보호 노력…대학서 산업기술 보안으로 박사 학위
경기남부 강력사건 해결…경기청 재직하며 총경~치안감까지 승진한 첫 인물
고기철 차장이 2019년 12월 경찰청 자치경찰추진단장을 맡을 당시 전국 자치경찰자문단 직원을 대상으로 자치경찰 도입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고기철 차장이 2019년 12월 경찰청 자치경찰추진단장을 맡을 당시 전국 자치경찰자문단 직원을 대상으로 자치경찰 도입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1991년 지방자치시대가 열렸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 부담과 역할 분담을 놓고 자치경찰제 전국 시행은 장기간 표류했다.

더구나 2006년 출범한 제주자치경찰은 수사 업무가 환경·관광·산림·위생 등 19개 분야로 한정돼 업무 수행에 한계가 있었다. 교통질서 업무를 맡으면서도 음주운전자를 처벌하지 못해 ‘무늬만 경찰’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2019년 제주경찰청은 제주자치경찰에 268명의 국가경찰을 파견, 7개 자치지구대·자치파출소에서 112순찰과 생활안전, 여성·청소년 범죄 예방, 교통사무를 담당하도록 했다. 이 같은 파격적인 조치는 당시 고기철 제주청 차장이 주도했다.

그 결과 제주지역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8년 82명에서 2019년 66명으로 1년 새 19.5%나 줄었다. 자치경찰이 사고 요인을 분석, 지방재원을 투입해 중앙분리대 설치 등 적재적소에 예방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고 차장은 역대 정부마다 도입에 난항을 겪었던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에 초석을 마련했다.

2018년 11월 고기철 제주청 차장이 제5회 전국 경찰관서 배드민턴 동호회 대회에 제주 대표선수로 참가한 모습.
2018년 11월 고기철 제주청 차장이 제5회 전국 경찰관서 배드민턴 동호회 대회에 제주 대표선수로 참가한 모습.

▲제주청 발령 하루 전 금융정보분석원 파견

고기철 서울특별시경찰청 자치경찰차장(치안감·59)은 서귀포시 토평동의 감귤농사를 하는 집안에서 2남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토평초등학교와 서귀포중학교, 서귀포고등학교(11회)를 졸업했다.

학생 시절 아가사 크리시티, 셜록 홈즈, 괴도 루팡 등 추리소설을 탐독하면서 경찰을 동경해왔던 그는 1982년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 진학했다.

1990년 경위(간부후보 38기)로 경찰에 입문했다. 동기로는 김도준 전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치안감)과 고창경 제주도 자치경찰단장(자치경무관)이 있다. 간부후보 38기 50명 중 제주 출신 3명 모두 고위직에 오른 것은 전무후무한 사례다.

경찰 생활 20년만인 2010년 그는 경찰의 꽃인 총경으로 승진했다. 객지생활을 오래했던 그는 고향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제주경찰청 경비교통과장을 지원했는데 발령 나기 하루 전 갑자기 금융정보분석원으로 파견됐다.

금융정보분석원에 가기로 했던 경찰 간부가 갑작스런 사정으로 발령이 취소돼 본청은 수사를 할 수 있는 젊은 총경을 물색했던 중 그를 낙점했다. 그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게 됐다.

각 나라마다 무역·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금융정보분석원이 있기에 가능하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전 세계 자금거래를 추적하고 분석하면서 테러나 범죄에 자금을 지원하는 불량 국가는 무역거래가 차단되고 자산이 동결되는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미국은 재무부 산하에 이 기관을 두고 있고, 현재 138개국이 FIU 회원국으로 가입돼있다.

그는 2년간 대기업의 자금세탁과 국세 포탈 등 금융범죄 분석 업무를 맡았다.

국내외 불법 금융거래와 수상한 자금에 대해서는 검찰·경찰·국세청·관세청 등 법 집행기관에 통보되는 데 해양경찰은 제외됐었다.

그는 해경도 금융정보분석원의 정보와 자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아울러 해경도 유능한 인재를 금융정보분석원에 파견하도록 길을 터줬다. 이 공로로 해양경찰청은 그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그는 “2010년 제주에서는 해군기지 사업으로 찬반 갈등이 표출될 당시 제주청 경비교통과장으로 발령 대기 하루 전에 갑자기 원치 않았던 금융정보분석원에 파견됐다”며 “저로 인해 400명이 넘는 총경 인사가 흔들릴 수도 있어서 파견 근무를 수용했는데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2013년 경기경찰청 외사과장으로 부임해 기업들의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을 보호해 주는데 앞장섰다.

당시 막대한 돈과 시간이 투입된 첨단 산업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이를 막는데 열과 성을 다했고 내친 김에 산업보안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는 숭실대 대학원 IT정책경영학과에 진학, 산업기술 보안에 대한 논문을 제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찰 본연의 업무에 머물지 않고 부단한 노력으로 산업기술 보안 전문가가 됐다.

2016년 4월 경기남부청 형사과장 재직 시절, 현장에 출동하는 특별형사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2016년 4월 경기남부청 형사과장 재직 시절, 현장에 출동하는 특별형사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경기남부에서 발생한 강력사건 해결 앞장

고 차장은 2015년 경기경찰청 형사과장에 부임했다. 경기경찰청은 2016년 3월 경기남·북부경찰청으로 분리됐다. 그래서 고 차장은 경기남부청 형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청 마지막 형사과장에 이어 경기남부청 첫 형사과장이 된 셈이다.

2016년 8월 경기도 안성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60대 부부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집은 방화로 잿더미가 됐다. 화성 연쇄살인 등 강력사건이 끊이지 않았던 경기 남부에서는 한동안 미제사건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에게 압박감과 책임감이 밀려왔다.

범인은 금품을 훔치기 위해 부부의 온 몸을 흉기로 찔렀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르는 잔인함을 보였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났지만 용의자는 물론 범행에 사용한 흉기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마을 어딘가에 버려진 범행도구를 찾기 위해 경찰관 수 백명을 동원, 대대적인 수색에 나섰다.

무더운 여름날 그 역시 현장에 나가 낫을 들고 도로변 풀을 벴다.

“사건 발생 8일째 꿈을 꿨다. 사건 현장 인근에 원두막이 있었는데, 그곳에 한 여성이 술상을 들고 오는 꿈이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피해자 안사람’이라고 했다. 피살된 피해자 부인이었다. 술상에 맛있는 안주가 잔뜩 있었다. 직원들은 열심히 수사하고 있으니 감사의 표시로 꿈에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날 오후 흉기를 발견했다.”

사건 발생 9일 만에 피해자의 집 인근 300m 지점에서 결정적 단서인 흉기가 발견됐다.

흉기가 발견된 다음날 인근 아파트 15층에서 50대 남성 A씨가 투신 소동을 벌였다. 이 남성은 공교롭게도 전원주택 화재 발생 최초 신고자였다.

수사결과 A씨는 도박을 일삼다가 수 억원 대의 빚을 져 강도짓을 벌이다 부부를 살해하고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고 있다.

고 차장은 “자기 일처럼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면 반드시 범인은 검거된다. 지금도 현장을 누비는 형사들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사건을 마무리하고 담배를 끊었다. 사건을 맡으며 평생 태울 양의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초조했고, 사건 해결이 절실했었다.

그는 2017년 경기남부청 형사과장 재임 중 경무관으로 승진했고, 제주경찰청 차장, 경찰청 자치경찰추진단장에 이어 2020년 경기남부청 수사부장을 역임했다.

지난 1월 치안감으로 승진하면서 서울경찰청 자치경찰차장에 올랐다.

경기경찰청 내부에서 총경과 경무관에 이어 치안감으로 승진한 인물은 고 차장이 유일하다.

자치경찰제를 설계한 고 차장은 “노무현 정부가 제주에서 시범 운영한 자치경찰제가 2년 전 제주에서 대대적인 실험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전국으로 확대됐다”며 “자치경찰제가 지방분권을 실현을 넘어 민생치안의 질을 한층 더 높이는 선진 치안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 차장은 “자치경찰 시대를 맞아 제주의 인재들이 제주지역의 치안을 담당해 혁신적인 성과를 일궈내면서 제주사회의 핵심 인재로 성장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2015년 5월 경기남부청 형사과장 재임 시 과학수사대 직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는 모습.
2015년 5월 경기남부청 형사과장 재임 시 과학수사대 직원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는 모습.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