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회선 버스를 타고 가는데 옆 자리에 앉은 준수한 사내가 묻기를 “제주해녀학교에 대하여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 “어째서 그런 질문을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청년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앞으로 나갈 문제로 많이 고민한 끝에 지상의 일거리는 포만상태로, 새로운 해중 활동에서 남보다 뛰어난 일거리를 하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이 젊은 사내의 충격적인 얘기에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 그는 말을 이어 “한림읍 귀덕리에 있는 해녀학교의 개설소식을 듣고 해녀의 기법을 배워 ‘잠수-질’을 익히면 반드시 미래에는 남자라야 더욱 뚜렷한 해중 직업이 돋보일 것입니다.”라 하였다. 후일 그가 잠수질을 배우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할 지는 알 수 없지만 천암함 폭침으로 사내들이 해중 활동에서 질문을 던졌던 그 사나이의 길이 앞으로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제주의 해녀는 예로부터 소섬이 있고 해서 구좌읍이 가장 많고, 애월읍 관내의 해녀는 구엄리와 하귀리에 비교적 많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해녀는 줄어들고 있다. 1985년 조사에 의하면 엄쟁이의 30세 이상 되는 해녀수를 보면 구엄리 65명, 중엄리 8명, 신엄리 33명, 용흥리는 없다.

제주목사 기건(奇虔.?~1460)은 추운 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전복 따는 여인의 모습을 보고, 그 후 선물로 가져온 전복마저 일체 먹지 않았으니 이는 곧은 청백리의 색다른 일화이다. 잠수질은 매우 고된 일로 민요 등에서 잘 나타난다.

나는 만일 그 ‘학사 해녀’와 다시 만났더라면 제주 해녀들과 함께 잠수질도 하고 ‘붙턱’에서 쉬면서 민요도 부르고 해녀들의 진솔한 삶을 경험하도록 권장할 것이다.

제주섬 바닷가에 있는 해녀(海女.사투리;잠수)들의 휴식처 ‘불턱’은 ‘해녀-탈의장’으로 변모되었다. ‘불-턱’은 불<火>, 턱의 합성어이다. ‘불턱’은 바닷가 바람을 가릴 위치에 돌담으로 둘러 만든 해녀의 대기처이자 휴식공간이다.

해녀들은 한탄스럽고 괴로움을 민요로 부른다. “바람이랑 밥으로 먹고/ 구름으로 똥을 싸곡// ‘물-질’이랑 집안 일로 삼앙/ 칠성판 등에 데 저승으로 삼앙// 설룬 어멍 떼어 두곡/ 부모동생 동기간 이별곡.// 한 바당이 북망산천인가!/ 테역 벙뎅이 황천길인가!// 보재기 잠녀 허랜 하고/ 이 내 몸이 왜 태어난노”

이와 같이 해녀들은 기아 속에서 사경을 헤매며 가속들과 멀리하여 힘든 물질을 하였던 것이다. 이런 강인한 기질이 세계에 유례없는 ‘해녀항일운동’을 일으켜 일본 당국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 불턱은 민요도 부르고, 상호 정보를 알린다. 옷을 갈아입거나 ‘잠수-질’이 끝나면 꽁꽁 얼어붙은 몸을 ‘불-턱’ 화기에 풀어 녹이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상군(최고급 잠수)으로부터 잠수질 기법과 예절, 바다에 대한 지식 등을 배우는 교습소이다.

물질 경험이 풍부하고 노장층 해녀 중 기능이 가장 뛰어난 해녀를 ‘상군(上軍)’이라 하며 ‘상군-불턱’은 그들만이 사용한다. 원로 잠수를 ‘대상군(大上軍)’이라 불러 그녀의 말은 잘 지키고 규율을 스스로 강요한다. ‘군(軍)’이란 해녀의 위계질서를 군대처럼 엄격히 다룬다는 함의(含意)로 본다.

애월읍 관내 해촌에는 요즘은 현대식 시설로 재래식 불턱은 사라져 간다. 원형이 잘 보존된 불턱은 고내리의 서쪽 ‘페세빌레-불턱’과 동쪽에 있는 ‘남또리-불턱’, 그리고 마을 중심부의 ‘시니물-불턱’ 등인데 이 불턱은 상군의 전용 휴식처인 ‘불턱’으로 동서 두 불턱을 지도 감독한다.

한번 해녀학교를 찾아가 본다는 것이 여태껏 실현을 못했다. 앞으로 해녀학교의 강사는 앞에 언급한 여러 가지 내용들을 가르치고 잠수질에 호기심을 갖게 함은 물론 접근 가능하게 교육과정을 짜고 학습지도에 임하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우리 제주해녀의 우수성과 자주성을 길이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교육의정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