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국무총리 공보비서관을 끝으로 20년 공직생활을 접고 정계에 입문했다.
16대 총선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으나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 비서실장으로서 이 시장 당선을 도왔고,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아 이 시장과 함께 청계천 복원사업 등을 추진했다.
17대 총선에선 `탄핵풍'을 뚫고 여의도 입성에 성공, `이명박의 복심'으로 불렸고, 대선 중앙선대위 전략기획총괄팀장을 맡아 창업공신 반열에 오른다.
대선 이후 "할 말 하는 충신이 되겠다"며 2008년 3월 대통령 형인 이상득 의원의 18대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거사'를 일으켰고, 이 의원과 박영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 등을 `권력사유화 4인방'으로 지목, 퇴진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왕비서관'으로 불리던 박 비서관이 사퇴했고, 대통령이 권력사유화 논란을 경고하자 정 의원도 인적쇄신 요구를 접고 잠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세종시 수정안 문제가 불거지자 박근혜 전 대표를 `제왕적 총재보다 더하다'고 비판하면서 정치전면에 나섰고, 최근 영포회 및 선진국민연대 의혹이 터지며 권력투쟁 논란에 재차 휘말리기도 했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4집 음반을 낸 가수의원이기도 하다. 부인 이화익씨(53)와 2남.
▲서울(53) ▲서울대 무역학과 ▲국무총리 공보비서관 ▲한나라당 대변인 ▲이명박 서울시장 후보 비서실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17.18대 의원 ▲대선 중앙선대위 전략기획총괄팀장 ▲한나라당 지방선거기획위원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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