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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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문턱 6월이다. 연초록빛 산과 들에 녹음이 짙어지고, 화사한 자태를 뽐내던 봄꽃들이 하나 둘 지는 계절이다. 허둥지둥 각박하게 사는 생활이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여유조차 없다. 문득 달력을 보니 내일(5일)이 망종(芒種)이다. 다람쥐 쳇바퀴돌 듯 사는 소시민들은 그렇게 캘린더에서만 유수같은 세월을 느끼곤 한다. 24절기 중 9번째인 망종은 일년 중 가장 바쁜 농번기. 밭갈이를 하고, 씨앗을 뿌리고, 보리베기를 하는 시기다. 옛사람들은 부엌의 부지깽이도 경황이 없을 정도로 바쁜 때라 했다. 하지만 신명도 있었다. 햇보리가 수확돼 그 눈물겨운 보릿고개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희망의 계절이었다.

한편으로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온몸을 던진 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포연이 멎은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그 이름모를 들녁에서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함성은 아직도 귓전에 들리는 듯 하다.

이처럼 6월은 숙연한 분위기가 짙게 배어난다.

하지만 2008년에 맞은 우리의 6월은 참으로 혹독하다. 물가폭탄에 신음하는 서민들의 고통과 촛불을 든 성난 민심이 들불처럼 메아리치고 있다.

불과 100일 전 “경제를 살리겠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던지며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워낙 큰 사건들로 민심 폭탄을 맞고 있다. 한 때 70%의 이명박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20%에 턱걸이하는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역대 어느 정권도 경험하지 못한 정권 초반기의 민심 이반이다. 지지율 하락의 속도만 놀라운 것이 아니다.

매일 밤 도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대와 경찰간에 밀고 밀리는 광경도 충격이다. ‘동맹휴업’ ‘정권타도’ 등 잊혀진 구호들이 들리고,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물대포 등을 동원하고,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 정확히 21년 전에 있었던 ‘6월항쟁’의 기억이 민주화가 진전된 이 시대의 6월에 생생히 오버랩되고 있음이 아이러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민심이 등 돌린 이유는 단순히 ‘쇠고기’에만 있지 않다. 정서적 이질감, 신뢰의 위기 등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여러가지 진단들이 있다. 여기에 현정부의 조급증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의 기대속에 탄생한 이명박 정부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서 국민 앞에 자랑하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행여 그 집착이 국정운영의 독선을 조장하고 쇠고기 졸속협상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마라톤의 레이스처럼 천천히 스타트를 해서 중간중간에 자기점검을 하고 꾸준히 결승선으로 가야 하는데, 처음부터 100m 달리듯 승부를 내려는 조급함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사실 우리 사회는 빨리빨리 조급증에 빠져 있다. 외국인이 지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적 기질도 그것이다. 물론 열정과 스피드, 기술력을 상징하는 빨리빨리 문화가 196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다.

문제는 부정적 측면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고 서두르는 바람에 적잖은 폐단을 낳고 있다. 여론을 수렴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기 보다는 일방통행식으로 추진하다 더욱 문제를 꼬이게 만든다.

사회생활이든, 개인의 삶이든 시간보다는 방향설정이 우선되고, 그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의 미학을 한 번쯤 점검해 보아야 할 때다.

영어 속담에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라는 말이 있다. 느려도 꾸준히 하면 경주에서 이긴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사회에 절실한 것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라는 말일 지 모른다.<오택진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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