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하게 잘 자라는 나무를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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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편집국 부국장 겸 서귀포 지사장

지난 1월 29일 오전.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남서쪽 식수대(植樹帶)와 서쪽 담장을 따라 줄지어 선 아름드리 녹나무 가지들이 무참하게 잘려져 있었다.


보통 새순이 돋아나기 직전 따뜻한 날을 잡아 나뭇가지를 손보는 데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었다.


유심히 지켜보니 나무 기둥과 큰 가지만 남겨두고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나뭇잎은 한 개도 남겨두지 않고 뼈대만 남겨둔 것이다. ‘강전정(强剪定)’이다.


나무가 안쓰러워 인부에게 물었다. 광합성을 하기 위해 나뭇잎은 조금 남겨둬야 하지 않느냐고.


답변은 곧바로 돌아왔다. “나뭇잎이 없다고 죽지 않아요. 나중에 새잎이 돋아납니다.” 


괜한 시비를 건다는 반응을 보인 인부는 금세 뒤돌아 기계톱을 이용해 나뭇가지를 자르는 작업에 열중했다.


이날 강전정이 이뤄진 나무는 성인이 팔을 뻗어도 한번에 안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나무들이었다. 최소 100년은 넘은 것으로 보이는 은행나무 1그루와 녹나무 8그루다. 모두 거목으로 성장한 이 나무들은 사시사철 새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왔다.


도교육청은 새 배설물과, 나무 열매 등이 나무 밑에 주차된 차량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이유로 뼈대만 남기는 강전정을 했다고 한다.


줄기와 잎이 모두 잘려 나가 뼈대만 남은 나무는 황량한 느낌마저 연출하며 인근 공원의 풍성한 나무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나무 위 둥지를 잃은 새들이 떠나간 이후 도교육청 마당에는 정겨움을 주던 새 소리도 사라졌다.


도교육청 본관 뒤편 서쪽 구석에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경우 수년 전 강전정이 이뤄진 후 지금은 몸통에서 나무젓가락만 한 잔가지만 수북하게 자라 보는 이들이 미간을 찌푸리게 한다. 조경수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이다. 조경 업무를 담당하는 도교육청 관계자들이 강전정 피해를 본 이 은행나무를 보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도교육청 외에도 봄을 맞아 제주 곳곳에서 가로수에 대한 ‘강전정’이 이뤄지고 있었다.


최근 볼 일이 있어 서귀포시 중앙로터리 인근 지인의 집을 방문하다 깜짝 놀랐다.


도심에 심어진 가로수 대부분이 강전정에 의해 가지가 무차별적으로 잘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세워 놓은 나무젓가락 같은 모습이었다. 몸통만 남겨놓고 가지를 대부분 잘라버림으로써 나무를 뾰족한 기둥처럼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한창 잎사귀를 뽐내며 봄바람을 맞아 하늘거려야 하는 나무들의 가지가 모두 잘려 나가서 잔인하다는 느낌마저 안겨줬다.


과도한 전정작업은 가로수에 독이 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나뭇잎의 25% 이상을 쳐내면 에너지 생산능력이 떨어져 수명이 단축된다.


가지를 자른 절단면은 병해충에 무방비로 노출돼 부패가 일어난다. 나뭇가지가 잘리면서 손상된 부분에서 부패가 일어나고 속이 텅 비면 나무가 구조적으로 불안해져 쓰러질 수 있다. 썩고 속이 텅 빈 가로수들은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오면 도로나 인근 건물을 덮쳐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무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함으로써 기후변화를 저감시키고 도시의 기온을 낮춰주고, 산소를 내뿜고 미세먼지를 흡착함으로써 공기를 맑게 한다. 수많은 곤충과 새의 보금자리가 되고, 사람들에게 안식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무가 없는 회색 도시에선 인간도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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