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시작, 그 탐색⑹ 이 길을 아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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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서울서 돌아오며 시내에서 동쪽으로 20분쯤 가다 병목현상의 길을 만났다. 돌연 오가는 차들이 뜸해지는 게 호기심을 불렀다. 길이 읍내로 찾아든 것임을 알았다.

내가 30년을 살아온 마을, 5분 거리에 비탈진 오르막길이 좋았다. 달리던 차가 속력을 줄이며 숨을 고르면 이내 긴장이 풀린다. 지형이 긴장을 이완시키는 게 놀라워 비탈이 다하는 지점에 작은 집을 짓고 100평짜리 정원을 가꿨다.

나무와 돌들의 교집합으로 야산 끝자락을 잘라낸 것 같았다. 정원이 자연미로 충만해 시간 가는 줄을 잊고 살았다. 이 곳에 정착하게 한 병목현상의 길은 인생에 성찰의 의미를 안겨주었다. 나는 단지 집을 짓고 정원에 나무를 키운 게 아니었다. 일 뒤로 오는 쉼의 슬기를 깨달은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삶의 지형이었다. 50줄의 나이에 하루 한 번 마을을 가로질러 오가며 걸었다. 잇달아 웃통을 벗어 던지고 무거운 아령을 들었다. 눈발이 흩날린다고 몸을 움츠리지 않았다. 한결같이 몸도 마음도 신바람이 났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정원의 나무와 꽃을 바라보며 눈 감으려 했다. 그러나 길은 딛히고 열리는 것. 원하든 아니든 길은 열리면서 사람을 변화시킨다. 두 아들이 가까이 모시고 싶단다. 강권(?)하는 바람에 무너지고 말았다.

시내 도심의 아파트로 난 길에 병목현상은 없었다. 시내로 오는 길은 확장이고 역류였다. 자동차와 사람들로 들끓는 크고 넓고 곧은 길, 질주와 소음의 길이었다. 고층빌딩을 휘감아 나오는 바람 소리가 유령의 울음으로 우는 곳이었다.

3년째다. 나는 어리둥절해 이곳에 어떻게 발붙일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도시도 사람의 세상이다. 더 시끌벅적한 서울에서도 자그마치 3년을 살았었다. 길은 뜻이고 삶이고 관계의 진전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장치다. ‘이 길에 나를 뿌리 내리자.’ 주먹 불끈 쥐고 엘리베이터를 오르고 내렸다.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두 동을 잇는 울창한 숲 속으로 완만한 곡선이 흐르는 운치 있는 길이다.

나는 이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아내와 함께 줄곧 이 길을 걷는다. 건강이 안 좋으니 오른손엔 지팡이를 짚고 왼손은 아내의 손을 잡는다. 좌우를 붙들어주니 가끔 흔들리는 균형 감각이 안정된다. 길을 걸으며 몸이 안정돼야 마음이 제자리를 찾는 것은 정한 이치임을 알음으로 깨달았다. 이 나이에 얻는 의외의 학습 효과였다. 이 곳에 와 길지 않은 시간인데 적잖은 나무들이 꽃을 피웠고 단풍이 곱게 물드는 것을 보며 함께 환희했고 같이 황홀해했다. 많은 나무들이 모여 커다란 숲을 이뤘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숲에서 보고 느끼고 배웠다.

이 길이 내 인생의 끝이라는 걸 충분히 알고 있다. 먼 데는 물론, 집 주위만 나가도 부질없이 주억거리기 일쑤이니 웬만하면 눌러 있어서 상책이게 돼 있는 게 내 몸이다.

내게 많은 길이 있었고 그 중 상당히 많은 길에 발을 놓았었다. 목적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실패도 했지만 작은 성취도 없지 않았으나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이 길을 아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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