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과 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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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

삼일절이 지난 지 3주가 지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삼일절 행사를 두고 여러 논란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논란 가운데는 ‘당연한 일’, 곧 상식에 벗어난 일도 있는 듯해서 마음이 불편하다. “미래를 향해 나가자.”라는 제안은 마땅하다. 그런데 “그러니 과거는 과거다.”라는 주장은 못마땅하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간다. 나폴레옹이 말했듯이 그 힘은 ‘손에 쥔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비장의 무기’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러한 희망이 실현된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는 과거가 된다. 마찬가지로 과거 어느 시점에서 현재는 손에 쥔 희망, 곧 미래였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현재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미래를 기대하면서 과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현재는 기억과 기대를 통해서 과거와 미래를 존재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그러나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미래에 대한 희망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그것을 희망함으로써 그 시절을 살아낼 수 있게 해주었던 ‘과거’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제안이 마땅하듯이,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자.”는 주장 또한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2008년 이후로 미국의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과 같은 건국절을 만들자는 제안이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1776년 7월 4일에 미국의 독립 ‘선언’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결의한 날짜는 그보다 이틀 앞선 1776년 7월 2일이다.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이 승인돼 파리조약이 체결된 날은 선언일로부터 7년 동안의 독립전쟁이 치러진 후인 1783년, 이 조약이 발효된 날은 1784년 5월 12일이다.

대한민국의 삼일절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해당하는 날이다. 3‧1독립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가 ‘선언’된 1919년 3월 1일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미국의 건국과 같은 과정을 거쳤다. 독립선언 이후로 26년 동안 독립전쟁을 치르고 난 1945년 8월 15일에 일왕 히로히토(迪宮裕仁)가 라디오로 항복을 ‘선언’했다. 우리는 이 날을 광복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미주리함(USS Missouri)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날은 1945년 9월 2일, 조선총독부가 미군에 항복함으로써 일제통치가 종식된 날은 1945년 9월 9일이다.

우리는 역사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두가 같은 기억을 가질 수밖에 없고,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니라 특정 관점에서 해석된 역사”이다. 독립을 결의하고, 조약이 체결돼 발효된 실제적인 날이 아닌 ‘선언’된 날을 독립기념일로 기억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언’은 말이다. 말의 힘은 ‘구지가(龜旨歌)’의 “중구삭금(衆口鑠金)”, 곧 “여론은 쇠도 녹인다”는 구절에서도 확인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힘이 필요한 시절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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