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할망, 제주 바다에 풍요의 씨를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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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등신 맞느라 마을은 들썩들썩 (上)

환영제 통해 지역민 삶의 정체성에 대한 공동체 의식 계승
마을 안녕을 비는 굿판 끝나자 음악 연주회·무용 공연 이어져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에 있는 영등할망 신화공원에서 ‘영등신맞이 환영제’의 축하공연을 펼친 바람난장 팀원들의 단체사진.
제주시 한림읍 귀덕1리에 있는 영등할망 신화공원에서 ‘영등신맞이 환영제’의 축하공연을 펼친 바람난장 팀원들의 단체사진.

복덕개를 통하여 영등 나라에서 오시는 영등신을 환영하기 위해 ‘영등신맞이 환영제’를 귀덕1리에 있는 영등할망 신화공원에서 갖는다고 했다. 그 환영제에 우리 「바람난장」도 더불어 축하공연을 펼치게 되었다. 준비 차 빠르게 그 장소를 검색했다. 꽃샘추위에다 아직은 봄이라는 절기가 무색한가. 손은 시리고 뺨에 닿는 바람은 사납다. 바닷바람이라 더 모질고 거칠었으리라. 


행사 팸플릿에는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는 하늘의 북녘 끝 영등 나라에서 출발하여 제주의 1만8000 빛깔의 바람을 움직이는 바람의 신, 천하의 생명을 바람으로 불어넣는 영등할망이 귀덕 ‘복덕개’를 통하여 오신다는 날이라 설명하고 있었다. 그 행사에 춤과 시, 노래 및 악기연주로 환영하기 위해서 우리 일행도 그곳을 찾았다. 마지막 꽃샘추위와 함께 봄 꽃씨와 해산물의 씨를 가지고 제주 섬을 복덕개를 통하여 영등할망이 찾아오시는 길이라 한다. 이 축제는 귀덕1리 주민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자긍심이며 이 축제를 ‘대물림에 대한 사명감’이라 소개하고 있었다. 이런 축제를 통하여 지역민의 삶의 방식과 정체성에 대한 마을공동체의 의식을 면면히 잇고 있는 활동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영등신맞이 환영제’에서 수심방이 굿을 하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는 모습.
‘영등신맞이 환영제’에서 수심방이 굿을 하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는 모습.

도착하여 보니 제를 올리고 있었다. 수심방이 굿을 하며 마을의 안녕을 빌고 있는 모습과 동네 어른들도 그 주변으로 오종종 모여앉아 정성스레 치성을 드리는 모습이었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음으로 집안과 마을의 안녕을 깊이로 빌고 있는 모양새가 엄숙하리만치 마음을 모으고 있는 모습에 숙연해졌다. 저 비손들이 모여 집안이, 동네가, 마을이, 나라가 편안한 것이리라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좀 있으니 마을 부녀회며 마을의 젊은이들이 국수며 차를 방문객들에게 대접한다. 쌀쌀한 날씨로 바싹 추웠는데 따뜻한 국수와 차까지 대접받으니 추위에 오그라졌던 몸과 마음이 펴졌다. 영등 할망 오는 날 날씨가 추우면 센 할망이 오는 것이고, 날이 따뜻하게 좋으면 순한 할망이 온다고 말한다며 옆에 앉은 동네 할머니가 예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라고 설명해 주셨다. 순한 할망이 오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더니 그건 아니고 센 할망은 센 할망 만큼씩 다 제 몫이 있어서 벌레나 잡풀들이 없어서 그해 농사가 잘된다는 말이 있다고 조곤조곤 설명해 주셨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굿판이 끝나자 이어 우리 공연이 시작되었다, 「바람난장」 대표이신 김정희 님께서 간단하게 공연소개와 함께 시작을 알렸다. 첫 무대인 여는 음악으로 문지윤 첼리스트가 ‘영등할망  탄 왐져’라는 주제로 연주를 시작했다. 원래는 바다였는데 복개 해 놓아 이렇게 공연장 및 행사장으로 쓰고 있다는 곳은 잔디와 디딜팡이 조화를 이루며 분위기 있게 잘 조성된 곳이었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오색기가 바람 업고 펄럭이는 가운데 첼리스트인 문지윤 님의 첼로연주가 행사장의 고요를 갈랐다. 4개의 현에서 나오는 음이 연주자의 몸집만큼이나 큰 악기의 닮은 듯 다른 음이 울림통을 통하여 흘러나오자, 모였던 할머니들께선 생경한 악기와 소리, 그리고 첼리스트의 손놀림, 몸놀림, 의상에 홀딱 빠져버렸다. 그렇게 시작을 알리는 「바람난장」은 이어 ‘영등할망 오람구나’라는 주제로 박연술과 제주 연무용단 공연으로 이어졌다. 


오랫동안 구전으로 전해지고 앞으로도 전해질 ‘웡이자랑’이라는 자장가를 첫 배경음악으로 깔고 무용은 시작되었다. 흰색과 청색이 그라데이션 색채를 지닌 커다란 부채를 두 손에 든 채, 펼치고 접는 것만도 힘들 텐데 저걸 음악에 맞추고 몸동작에 맞출 뿐만 아니라, 단원들과 호흡을 맞춘다는 게 보면서도 신기했다. 저런 조화로움이 예술이고 재능이리라. 특히 전주와 간주 부분에서 ‘웡이자랑 웡이자랑’이 나오자 너무 익숙하게 듣고 불렀던 음으로 이어지는 노래라서 그런지 나이 든 분들 얼굴에 옛 추억을 소환이라도 하는 것인지 표정이 발그레하니 곱다. 공연이 끝나자 많은 관객의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영등할망 오람구나’를 주제로 박연술과 제주연무용단이 무용을 하는 모습.
‘영등할망 오람구나’를 주제로 박연술과 제주연무용단이 무용을 하는 모습.

이어지는 무대는 얼굴보다 더 큰 모란꽃을 들고 화무 공연이다. 강렬한 빨간색 꽃은 무용단원들 의상과 어우러지며 사람이 꽃인지, 꽃이 사람인지 헷갈렸다. 또 입고 있는 의상인 옷이 꽃인지, 단원들 춤추느라 어우러진 모습이 꽃처럼도 보여 그 화려함에 뭇시선을 강탈했다. 흔히 대하지 못하는 이런 공연 시간을 마주하니 신기한지 한 할머니는 무용단이 빙빙 도는 몸동작에선 ‘가만히 앉은 내가 다 어지러운데 어떻게 저런 춤을 추는지 재주도 좋다’며 바라보는 시선 주름진 얼굴 가득 젊음이 건네는 부러움과 고움을 큰 박수로 답례하고 있었다.


▲영등할망 오는 것도 반갑고 느네도 반갑다


 오후로 들면서 햇살이 쨍~하고 얼굴을 내밀자 곳곳에 따스한 온기가 겹겹이 입은 두툼한 패딩 속을 파고들어 꽤 따뜻했다. 고만고만한 색깔과 모양으로 된 모자들과 마스크를 쓴 채 양지쪽에 모여 앉은 귀덕1리 여자 삼춘들 모습이 약속하지 않은 약속인 듯 단체 관람객처럼 보여 보는 눈이 다 재미있고 즐거워 피식 웃음이 새었다. 강상훈 님의 시 낭송으로 이어지는 시간. 아까 공연이 시작될 때 연주해 주신 첼리스트인 문지윤 님의 첼로연주를 배경 삼아 강상훈 님의 중후한 목소리로 오보영 님의 시 ‘새 출발’ 낭송은 흉내도 내기 힘든 목소리로 무대의 분위기를 장악한다. 저 목소리 톤은 들을 때마다 설레어 얼른 내 마음 들키는 게 아닌가 싶어 주위를 살피게도 한다. 끌린다.

문지윤 첼리스트의 첼로 연주를 배경 삼아 강상훈 시낭송가가 시를 낭송하는 모습.
문지윤 첼리스트의 첼로 연주를 배경 삼아 강상훈 시낭송가가 시를 낭송하는 모습.

꼬여있던 매듭도 풀었습니다
걸려있던 가시도 빼냈습니다

미련도 없이
후회도 없이

흐트러진 자리를 모았습니다
엉켜있던 모두를 보냈습니다

홀가분한 기분
떳떳한 마음으로

내일을 위해
어제를 지웠습니다

 

살면서 관계를 잇고, 또 어쩔 수 없이 끊어야만 하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오는 삶의 모습을 꼬인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풀어야 하고, 가시처럼 불편하면 빼내면서 아파야 할 부분은 아파도 하면서 묵묵히 버티며 살아내야 함을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시인의 말처럼 내일이라는 새로운 삶을 위해 힘들고 지친 것을 모으고 때론, 떠나보내려고 어제를 지우면서 말이다.

글=이애현 작가


▲총감독=김정희 ▲시낭송=강상훈 ▲춤=박연술과 제주연무용단 ▲연주=문지윤 ▲사진작가=허영숙 ▲음향감독=장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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