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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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가 매섭게 내리던 날, 우산을 받쳐 준 이는 왔던 길을 몇 번째 왔다갔다하느라 바닥에는 발자국만 자욱하다. 사라지는 혼자만의 상념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올라타려다가 왠지 아니다 싶어 돌아섰고 과거에나 있었던 추억을 곱씹으며 눈물 대신 애써 웃음으로 밤과 조용히 친구 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머리에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채 바쁜 걸음을 걷는 사내가 보였고 나는 용기를 내 “실례가 안 된다면 함께 쓰겠느냐”라고 물었다. 상대는 고맙다며 술이나 차를 마시지 않겠냐고 싫지 않은 제안을 건넸다.

어쩌면 정해진 만남의 시작이다. 망설임은 잠시, 대추탕의 은은함에 조금씩 추위도 녹여졌다 그림을 전공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붓을 꺾은 지 오래이다. 자신감은 떨어졌고 동생들 뒷바라지는 외면할 수 없는 당장의 현실. 청춘은 매정하게 흘러갔다. 누구를 좋아하는 것도 사치였다. 어쩌다 보니 결혼은 상상만 할 뿐, 남의 일인듯 귀찮은 존재였다. 연로하신 노모는 뇌졸중에 치매까지 중환자실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양원으로 모시라는 병원의 최후의 통첩에 알았다는 대답은 했지만 이도저도 못하는 처지로 인해 한숨뿐인 슬픔이고 반쯤은 포기한 상태였다.

어머니의 영혼은 푸른 색깔로 오셨고 밝은 분위기에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삶의 흔적을 되짚어 보면 기쁜 행복보다는 최선을 다했다는 자랑거리이다. 정신은 몸에서 떨어져 저만치 멀리 있고 떠나야 할 준비에 소홀함도 없다. 뻔한 당부는 식상하고 평소의 가르침대로 있어야 할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며 남에게 업신 당하지 말라신다.

거짓을 싫어하고 착함에 익숙하라는 귀 따가운 간섭은 줄 수 있는 가르침의 전부였다. 다시 물으니 늦게라도 운명의 짝을 찾아 이루고 싶은 꿈을 다시 하라는 부모의 심정을 그대로 전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헛된 망상은 이제 그만. 자유로운 쉼표를 찍어내자는 구름과 같은 평안은 이별의 인사 대신이다.

누구보다 떳떳하게 죽음을 맞이할 출발선에 섰고 어디로 간다는 것에 확실한 믿음은 소풍 가는 아이마냥 걱정보다는 희망찬 기대이다.

헤어짐에 덧없음 보다는 아름다움이라도 간직하자. 꽃과 나비가 봄 향기에 취할 때 가슴에 남겠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자 끝이다.

(영혼과 대화 중, 가족들이 흔히 하는 질문에는 평소의 성격과 너무 다르다며 놀랄 때가 있다. 고집이 세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정함에 마음의 벽이 있었다 하더라도 속에 있는 진심은 부드러움과 사랑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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