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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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애 수필가

새순이 올라온다. 뙤약볕 아래 죽은 듯이 처져 한동안 애를 태우더니 모두 사름*한 고구마 모종이 대견하다. 아침저녁으로 두어 줄의 고구마 이랑 앞에 서성이며 감탄하는 날이 많아졌다.

언젠가부터 고구마 순이 댕강댕강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하천 변이나 산기슭의 덤불 속에서 한잠을 잔 고라니가 밤에 다녀간 것이 틀림없다.

고라니는 마치 저를 위해 차려놓은 밥상이라는 듯이 당연하게 먹었다. 두어 이랑의 새순이 잘려나갔다. 검은콩을 뿌려 놓은 것 같은 똥과 선연하게 찍힌 짐승의 발자국을 보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유년시절, 큰 방에 고구마 저장고인 수수깡을 들이면 초겨울이었다. 겨우내 윗목을 차지하며 식구처럼 함께 지냈다. 긴 겨울밤, 마실에서 돌아와 수수깡을 뒤지면 일렁이는 호롱불 따라 내 그림자도 흔들렸다. 할머니는 삶은 고구마가 남으면 정성껏 썰어 아래채 초가지붕에 널었다. 꾸덕하게 말린 빼때기는 벽촌의 궁한 계절을 채워주던 든든한 먹을거리였다.

마을 이장 댁의 나날이 무성해지는 고구마를 보면서 더욱 조바심이 났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밤새 번을 서며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하루빨리 다른 곳으로 가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파리가 한 움큼씩 사라지는 것을 보며 발을 구르던 어느 날, 채전 광나무 울타리에 어른거리는 물체를 보았다. 놀랍게도 고라니였다. 산짐승이 대낮에 민가에 내려왔다면 절체절명의 순간일 것이다. 자세히 보니 배가 아래로 처져있다. 새끼를 밴 것이 틀림없다.

고라니는 한 입 먹을 때마다 주위를 살핀 후 조심스럽게 또 베어 먹었다. 쫓아내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숨죽여 바라보았다. 새끼를 잉태한 어미는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쓴 모습은 숙연하기까지 했다. 순간, 대항할 것이라곤 도망치는 것밖에 없는 짐승의 슬픈 눈망울을 보았다. 땅에 닿을 정도로 부른 배를 뒤뚱거리며 나무 울타리를 비집고 들어온 고라니에게 고구마 잎은 생명줄이었을 것이다. 고구마를 내주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민둥산처럼 비었던 고구마 이랑에 연둣빛이 아슴아슴하게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이파리가 고라니 뱃속의 새끼를 키울 동안 땅속의 뿌리는 또 다른 생명을 밀어 올리고 있었나 보다. 줄기는 새순이 올라올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푸른 길을 창창하게 내기 시작했다. 고라니는 허기만 채우고 간 것이 아니라 순치기를 하고 갔던 것이다. 그것은 쫓아내야 할 훼방꾼이 아니라 보듬어야 할 곁꾼이었다.

인생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지난날을 돌아볼 때가 많다. 별 탈 없이 이만큼 오기까지 알게 모르게 곁꾼들의 손길이 많았음을 깨닫는다. 길을 잃고 헤맬 때 기꺼이 스승이나 길벗이 되어준 그들을 떠올린다. 나는 누구의 곁꾼이 되어본 적이 있었던가.

푸른 길을 힘차게 내고 있는 고구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싱그럽다. 고라니가 앞무릎을 꿇고 지은 입 농사에 올해는 풍작을 기대해본다.

(* 사름 : 옮겨 심은 지 4~5일 후에 완전히 뿌리를 내려 푸른빛을 생생하게 띠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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