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
치자꽃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조양임 수필가

매일 아침, 미용실에 간다. 단골 미용실 입구에 자리한 사철 푸른 치자나무 올여름도 하얀 치자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하얀 꽃술이 내뿜는 감미로운 향기는 손님들 후각을 흠칫 자극한다.

치자꽃은 천오백 년 전 아시아 대륙에서 도입된 상록수로써 이름은 ̒꽃치자ʼ 라 부른다. 바람개비 모양인 하얀 꽃말은 한 서린 여인의 슬픔처럼 애수가 서린다. ʻ레이디 데이ʼ 라는 애칭으로 불린 전설의 재즈 디바, ‘빌리 홀리데이’는 머리에 장식된 하얀 치자꽃이 그녀의 마스코트였다. 청마 유치환 시인도 애틋하게 사모했던 이영도 여사를 향기 짙은 치자꽃으로 비유했을 만큼 꽃 향은 맑고 순수한 여향이자 고향의 향수라 할 수 있다.

유년 고향 집 뒤뜰에는 치자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아버지는 치자꽃을 한 아름 따서 할아버지 안방에 놓았다. 향수가 귀하던 시절이라 방향제의 대용품이었다. 아버지는 치자열매를 달여서 차로도 마셔 불면증을 다스리기도 했다. 치자 가루를 밀가루에 개여 환부에 붙이면 어혈을 녹인다고 하여 가정상비약으로도 사용하였다. 잔칫상에 멋스러운 ‘담복화전’을 만드는 식용으로도 사용했던 꽃이다.

미용실 원장은 나와 동갑내기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희로애락을 서로 나누며 절친하게 지내왔다. 오래전, 미용 기구라야 쇠 고대기를 구공탄 불에 달궈 머리를 손질할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다. 미용실은 그녀의 진솔한 성품에 단골손님들로 북적이고, 차례를 기다리는 여인들의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이다.

그녀는 사십여 년간 나의 멋과 자존을 살려주는 예술인이다. 나도 곱게 다듬은 내 모습을 보면 기분이 산뜻하고 행복해진다. 아무리 고급 의상을 갖추었어도 머리가 단정하지 않으면 뭔가 빠진 것처럼 기분이 찜찜해진다.

그녀를 만나면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고 싶어진다. 살아가면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타향에서는 누구나 친분을 쌓기가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 사십여 년 살아왔던 이 올레에서 그녀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라고 말하고 싶다. 장인정신으로 살아가는 그녀, 손은 관절 통증과 파마약의 역한 냄새도 견디며 미용실을 찾는 손님들에게 항상 정성으로 친절을 다한다. 봉사 정신과 덕행까지 갖춘 그녀와 나는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세월 속에 그녀와 나도 고희를 넘어섰다. 언제부터인가 성긋성긋한 흰머리는 지난한 생을 말해주는 흔적이기도 하다.

나이 탓일까. 미용실 발길도 부진해진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소리 없이 떨어지는 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그녀도 나도 얼굴에 잔주름과 골이 짙어진다. 옷차림도 편안하고 느슨한 차림을 선호하게 된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서로 성격은 다르지만, 삶의 철학이 뚜렷한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날까지 치자꽃향처럼 아름다운 우정을 간직하고 싶은 바램을 간직하고 있다.

스무 해전 아들 결혼 때 육지까지 찾아와 내 미용을 담당해 주었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미용실을 찾았다. 그녀의 빠른 손놀림이 머리를 매만지자, 마법처럼 머리 모양이 완성된다. 며칠 동안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도 한껏 풀어놓는다. 그녀가 치자꽃처럼 환하게 웃는다. 그녀의 성품을 내보이듯 거울 앞에는 올망졸망한 치자가 익어간다. 향기로운 꽃은 남의 시선을 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눈길을 끌 듯 그녀의 향기는 나를 잡아당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