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시작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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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미 문화부장

제주섬 해안마다 밀려드는 쓰레기로 몸살이다. 알록달록한 쓰레기의 대부분은 플라스틱 어구들이다. 바람과 해류의 영향으로 쓰레기의 출처도 다양하다. 혈세를 투입해 수거하는 일도 만만치 않지만, 바다에서 육지로 옮겨진 쓰레기의 처리도 문제다. 무엇보다 바다 생태계가 겪는 고통은 또 어떨지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다.

미래의 고고학자들이 우리가 사용한 플라스틱이 겹겹이 쌓인 지층을 발견한다면 우리 시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시대를 거쳐 플라스틱에 의한 새로운 지질학 시대인 ‘플라스틱기’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2019년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되며 책으로도 발간된 ‘인류세:인간의 시대’에서는 유엔환경계획과 노르웨이 극지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현황이 소개된다.

해양에 떠오른 플라스틱 쓰레기의 70%는 어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단지 10% 정도의 플라스틱만 물에 떠 오른다는 것이다. 나머지 90%는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산에서는 해마다 수십, 수백 톤의 쓰레기가 쌓이는 상황이다. 각종 식량의 포장지와 플라스틱 물병, 찢어진 텐트와 산소통 같은 등반 장비에 옷가지도 곳곳에 버려져 있다. 쓰레기에 쓰인 언어도 다 다른데, 그야말로 다국적 쓰레기장이다.

그뿐만 아니다. 인류가 달에 착륙한 이후 18만7000㎏의 쓰레기를 달에 남겼다는 사실은 충격을 안긴다. 책에서는 망치, 기계식 카메라, 백팩, 메달, 골프공, 삽, 가족사진, 기념품 등이 남겨졌다고 설명한다. 특히 골프공은 달에 다섯 번째로 착륙한 엘런 셰퍼드가 착륙 이후 골프를 쳤는데, 멀리 날아가면서 회수하지 못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세계최초의 합성 플라스틱은 1868년 발명가인 미국의 존 웨슬리 하이엇에 의해 만들어진 당구공이다.

당구공의 발명은 ‘상아 당구공의 대체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1만 달러를 상금으로 주겠다’는 미국 당구용품 회사 펠란 앤드 콜랜더의 광고에서 시작됐다.

당시 당구공은 주로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로 만들었는데, 야생 코끼리 밀렵이 성행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고 물량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면서 대안이 필요했다. 그렇게 아프리카 코끼리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플라스틱이 지금은 지구 생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기업은 불필요한 플라스틱을 만들지 말아야 하고, 소비자는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바다와 육지를 통틀어 무분별한 투기도 없어야 하고, 재활용, 재사용에 따른 사회적 공감대 형성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과학적으로 획기적인 플라스틱 분해 방법이 개발돼야 한다는 것이 대세다.

2017년 스페인 칸타브리아(Cantabria) 생의학연구소의 페데리카 베르토키니(Federica Bertocchini) 연구원은 폴리에틸렌을 먹고 소화하는 애벌레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다. 꿀나방 또는 봉랍나방으로 알려진 ‘갈레리아 멜로넬라(Galleria Mellonella)’는 꿀벌의 벌집에 알을 낳는데, 유충은 밀랍을 먹고 자란다. 밀랍과 같은 타입인 폴리에틸렌의 화학결합을 끊는 능력을 발견한 것이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갈레리아 멜로넬라 유충을 이용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꿀벌과 천적 관계인 유충을 활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어 다양한 세균으로 연구가 확대되고 있다.

인간의 필요로 플라스틱 당구공이 만들어졌다. 이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레리아 멜로넬라가 등판했다. 플라스틱을 지구상에 탄생시킨 것도, 이제 이를 처리하려는 것도 결국 인간인데, 결국 해결 방법은 자연에서 찾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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