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있어야 할 제자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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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녀 수필가

전농로 벚나무 길을 걷는다. 지난가을에도 높고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곱게 물든 잎들을 품은 가로수 길은 여전히 운치로웠다. 오래 살아온 동네이기도 하지만 계절마다 다르게 펼쳐내는 자연의 순환과 늘 동행하는 길이다.

천천히 걷던 중 오늘도 그 나무 앞에서 절로 발길이 멎는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찾았는지 모른다. 돌담까지 두르며 벚나무 아래 공간을 메워버린 쪼그만 화단들, 그 안에 빼곡히 심긴 나무들 틈에서 가지가 잘려 누렇게 말라가는 나무가 항상 눈에 밟힌다. 더 자라지 못하도록 누군가가 손을 쓴 게다. 아파하는 나무는 소철나무다.

얼마 전에 어느 신부님이 쓴 『성당지기 이야기』를 읽었다. 프랑스 리옹에서 유학하던 당시의 일이다. 한국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전혀 없는 곳이라 외로움과 학업 스트레스가 겹쳐 지쳐가던 어느 날 프랑스인 부부가 신부님을 찾아왔다. 한국인 남매를 아기 때 입양해서 키워왔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이 암에 걸려 투병하던 중 더는 가망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는 거다. 마지막으로 한국 신부님이 아들을 꼭 한번 만나달라는 부부의 애타는 요청이었다.

신부님은 바로 아이를 찾아갔다. 하지만 아이는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신부님은 계속 찾아가 부모님을 통하여 안부를 전하고 예쁜 카드에 마음을 담아 전하기를 여러 차례, 하지만 만남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통이 심해갈수록 아이는 축복받지 못한 자신의 출생과 버려지듯 입양된 자신을 저주하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아이에게 신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결국 먼 타국의 낯선 땅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고 하느님 품으로 갔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신부님에게 부모님이 전했다. 마지막 순간에 아이가 신부님이 보낸 카드를 품에 안고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해달랬다고. 잠자듯 누워있는 아이에게 신부님이 다가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브르노…, 이제 편히 쉬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아이는 마치 한국말을 알아듣는 듯 평온해 보였다고 한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 젊은이 십여 명이 신부님을 찾아왔다. 반가운 김에 “안녕하세요?”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했더니 돌아온 건 “Bonjour, Enchante.”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였다. 입양아들이었다. 한국 신부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고 싶어서 찾아왔던 거다. 그들은 언어도 환경도 모두 자신들의 본모습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멀지 않은 곳에 ‘자살 다리’가 있는데 그곳에서 자살하는 사람 대부분이 한국 입양아들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신부님은 내내 들어줄 뿐 할 말이 없었다. 정체성의 혼돈으로 존재감을 부여잡느라 내적 갈등이 오죽 심했을까. 결코 헤어나지 못할 진행형일 터.

섣부른 판단이 생명체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닌지. 햇볕과 물과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푸른 하늘을 향해 쭉쭉 자라야 할 존재들이 머무를 삶의 자리는 과연 어딘지.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를 올려다보며 착잡한 마음을 달랜다. 그러며 기도한다. 본디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낯설고 먼 타국의 땅, 돌이킬 수 없는 길 위에서 속울음을 삼키며 아파하는 이들에게 신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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