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유적지 도령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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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시조시인

지난해 12월 28일 서부공원 입구 도령마루 4.3 유적지에 위령 공간 조성 제막식이 있었다. 유족인 문덕숙(80) 씨는 “경찰이 제주농업학교 다니던 오빠를 조사할 게 있다며 데려갔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었어요. 나중에 도령마루 소나무밭에서 여남은 명이 총살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신들을 쌀가마니로 덮어놨는데, 어머니랑 내가 가서 오빠를 확인했어요. 몸에 아홉 군데나 총상 자국이 있었습니다.”고 눈물을 흘리며 70여 년 만에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마음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도령마루 소나무 숲은 초토화 시기인 1948년 11월부터 1949년 2월까지 당시 용담, 노형, 연동 등 도내 곳곳에서 죄목도 모르고 끌려온 주민 80여 명이 학살된 곳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79년 노형동 출신 소설가 현기영의 단편소설 ‘도령마루 까마귀’가 발표되면서였다. 그 후 2019년 제주민예총에서 4·3 해원 상생을 염원하는 굿을 하고, 방사탑도 쌓았다. 또한 오랫동안 있던 해태상을 제주시에서 철거했다. 따라서 해태 동산이라는 명칭이 도령마루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던 유적지 도령마루에 도민과 관광객, 미래세대가 4.3의 아픔을 기억하는 추모공간을 마련하고자 제주도에서 추진하였다. 2년에 걸쳐 3억 원의 예산을 투입, 390.5㎡ 부지에 추모공간이 마련되었다.

겹겹이 쌓은 돌담 위에는 소설 ‘도령마루 까마귀’에 나오는 까마귀를 오석(烏石)으로 형상화해서 올려놓았다. 돌벽에는 당시 학살당한 사람들의 명패가 붙어 있다. 가운데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기리는 의미를 담은 원형 조형물을 설치해 놓았다. 바로 왼쪽에는 이곳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 동산에 설치했던 방사탑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제주돌을 넓적하게 자른 돌을 깐 바닥에는 제주 시인들의 4·3을 제재로 쓴 시구가 군데군데 새겨져 있다. 그리고 제막식과 함께 무명에 싸매어 둔 울음을 풀어’란 제목 아래 4.3과 관련된 시화도 1월 31일까지 전시되고 있다.

이곳을 포함한 서부공원이 17만8,540㎡의 넓이로 2026년에 완료될 예정으로 추진하고 있다. 완성되면 환경이 더욱 좋아질 것이다. 따라서 4.3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는 도심지 명소로 자리 잡을 것이다. 차질 없이 이루어져 산 교육장과 쉼터로 자리매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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