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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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숙 수필가

한낮 기온이 영하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일기예보를 들었다. 창밖에서는 빈 나뭇가지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폴라티를 입고 그 위에 외투를 걸쳤다. 부츠를 챙겨 신었다. 구둣솔로 반짝거리는 가죽으로 되어 있는 구두코에 광을 내고 집을 나섰다.

지인과 만나기로 한 찻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기와집을 개조한 곳이라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이미 신발장에는 꺼내기 좋도록 뒤축이 보이게 정리된 신발들이 가득했다. 겨우 빈자리를 찾아 부츠를 넣었다.

따뜻한 오미자차와 다식이 예쁘게 차려져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근황부터 물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계를 보던 지인이 그만 일어서자고 했다.

입구로 나오니 내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신발장을 둘러봐도 낯선 신발뿐이었다. 신발들이 일제히 내게서 등을 돌린 듯했다. 내 부츠의 뒤쪽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지인이 신발장에 남아있는 몇몇 신발을 꺼내서 늘어놓았다. 짙은 회색의 부츠, 발목에 털이 있는 부츠, 뒤쪽에 다른 가죽이 덧대있는 부츠, 모두 내 신발이 아니었다.

지인이 매니저를 불렀다. 매니저가 신발들을 들고 남아있는 손님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확인하는 모양이었다. 가죽을 덧댄 한 켤레를 제외하고는 다들 임자가 있었다.

지인은 매니저에게 보상하라며 따졌다. 당황한 나는 괜찮다며 남은 신발을 신고 가겠다고 했다. 불편한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보상금이라며 매니저가 십만 원을 내밀었다.

그런데 신발을 신는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낯선 신발이 너무 편했다. 발에도 꼭 맞았고, 내 팔자걸음에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부츠를 벗어 신발장에 넣었다. 그 순간 알았다. 그 부츠가 내 신발이라는 걸. 매끈한 구두코가 반짝거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항상 신발장에 신발이 앞쪽을 향하도록 넣는다. 그러고 보니 내 신발의 뒤쪽을 눈여겨본 적이 없다. 다시 부츠를 꺼내 뒤쪽을 살펴보았다. 덧댄 가죽이 여전히 낯설었다.

다시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며칠 고민한 끝에 매니저에게 전화해 온갖 변명을 해가며 사과했다. 계좌번호를 남기면 십만 원도 보내겠다고 했다. 다행히 매니저는 부드러운 어투로 응대해 주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늘 사물의 앞면만을 보아 온 것 같다. 앞태를 보고 옷을 골랐고, 미용실에서도 앞모습만 마음에 들면 뒷모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심지어 책조차도 앞표지를 보고 선택했다. 바쁜 세상에 뒤쪽까지 살펴본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흔히 뒤쪽은 앞쪽에 가려있다. 앞면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만, 뒷면은 데데하니 개성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뒤쪽이 없는 앞쪽이 있으랴. 내가 방향을 바꿔 마주 보아야 뒤쪽은 비로소 모습을 보인다. 그 뒤쪽과 마주쳤을 때 이리도 낯선 건 내가 반쪽의 세상을 외면하며 살고 있었다는 방증은 아닐지.

자주 신는 신발 몇 켤레를 뒤축이 보이게 신발장에 정리한다. 마치 새로 장만한 신발들 같다. 문득 접혔던 세상의 페이지 반쪽이 펼쳐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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