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눈(心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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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시력이 1.5, 2.0으로 정상이었다. 가족력이려니 했다. 노안이 시작된 건가. 50 문턱에서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그 때는 안경알이 돋보기를 깔고 있어 앞이 몹시 어지러워져 책을 볼 때면 돋보기로 바꿔 끼기도 했다. 과학기술은 안경이라고 멈춰 있지 않았다. 다중초점렌즈가 나오면서 눈앞이 차분해졌고, 덩달아 눈앞의 안개도 말끔히 걷혀갔다. 헌데 눈앞에 또 안개의 징후가 오락가락하는 게 아닌가.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선가, 눈의 적응에 문제가 있는 건가 헷갈린다.

자칫하면 눈이 메말라 껄끄러우니 눈에 점안액을 넣어 촉촉이 적셔주며 다독거렸다. 짐작에 평소 눈을 혹사하는 것 같다. 책을 읽거나 타자를 하며 얼마나 부대끼는가. 눈곱이 끼고 늘 앞이 흐릿하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찬물에 눈을 씻는 버릇이 생겼다. 세안(洗眼)인 셈인데, 눈앞이 말갛다. 거기에 점안액 두세 방울을 넣어주면 눈에 힘이 생기면서 형형해 오는 걸 느낀다. 백내장을 의심하면서도 안과에 가지 않고 버텨온, 검증되지 않은 내 눈 돌보기 방식이다.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너무 과신할 건 아닌 것 같아 어중간하다.

역시다. 찜찜하고 흐릿한 증후가 점차 심해간다. 자판 위를 제법 미끄러지던 타자가 중심 못 잡아 뒤뚱거리더니 급기야 독수리타법으로 퇴행하고 있잖은가. 명색 20권의 작품집을 낸 작가로 자존에 큰 상처를 받았다. 안경점을 찾아 안경을 새로 맞췄다. 다중초점렌즈에 한 번 더 신뢰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안경사가 닦아낸 안경알이 유난히도 맑다. 됐다. 이젠 읽고 쓰고 할 만하겠지 싶어 귀갓길이 신명 났다.

그러나 일 년이 채 안돼 또 묵은 안경 티를 내기 사작하는 게 아닌가. 그놈의 안개가 끼어 눈앞이 어지럽다. 도대체 안경이 몇 개째인가. 과학에 대한 믿음이 산산히 무너져 내리고 내가 내 눈을 못 믿겠다. 이제부터는 숙면 뒤 눈 맑을 때를 틈 타 읽고 쓰고 하면 돼잖을까. 하지만 어물어물 넘어갈 일이 아니다. 낭패하기 전에 눈 귀를 관리해야 한다. 머릿속이 이슬처럼 말갛고 눈에 동살의 빛이 스미는 때를 이용하기로 하고, 머리와 눈에 쉼을 주자.

유채꽃 만개한 2월, 가수 이용복을 일출봉 가는 길에서 해후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배어 있잖은 홍안, 그가 가족으로 보이는 여인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렸다.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앞을 못 보는 그가 일출봉과 유채꽃을 보러 제주까지…. 나는 놀라는데 그는 태연하다. 예의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몸 전체에서 뿜어나오는 기운은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르잖다. 앞 못 보는 그가 무엇으로 관광을 할까. 하지만 안타까워하는 건 나였지 그가 아니었다. 그는 여인과 함께 유채꽃이 피어 있는 돌담길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는 산을 보고 꽃을 느낄 것이다. 그는 지금 성산포의 바다냄새와 유채꽃 향기와 아직 한기 덜 걷힌 하늬와의 칵테일을 즐기고 있으리라. 그늘을 걷어내느라 몇 조각 흰 구름이 앞장서고 그의 뒤로 다사로운 햇살도 잰걸음으로 따라나선다.

그는 마음의 눈으로 산과 바다와 꽃을 보며 아름다운 제주의 하루를 즐겼으리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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