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서로에게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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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도평초등학교 교장·수필가

우리는 모두 평화를 바라지만 ‘모두의 평화’는 쉽게 오지 않고 있다. 남과 북은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경계를 만들었고 어느덧 70년이 흘러갔다. 서로 간의 만남이 끊긴 경계에서 어떻게 평화와 안녕을 만들 수 있을까?

‘평화와 공감의 평화ㆍ통일 연수’로 시간이 멈춰버린 평화의 섬, 강화도에서 북서쪽 접경지 깊숙한 곳, 교동도 망향대에 올랐다. 섬 안의 작은 섬마을, 계단을 오르며 시선을 멀리 던지니 철책이 가로막힌 야트막한 물길 건너편으로 드넓은 연백평야가 펼쳐진다. “저 앞이 북한이에요.” 눈이 번쩍 뜨인다. 섬 끄트머리에서 보면 이북 땅이 손에 잡힐 듯, 소리를 지르면 북녘 들녘에 울려 퍼질 듯 지척이다. 파주도 가 봤지만, 맨눈으로도 체감상 이곳이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것이 실감 된다. 소리를 지르면 그리운 어머니가, 누이가 달려올 것만 같은데, 흐르는 저 잿빛 강물은 그은 금을 무시하고 오늘도 무심히 흐르고 있다.

교동도와 북한과는 불과 2.6㎞의 짧은 거리, 새 떼 한 무리가 난정저수지에서 목을 축이고 바다를 건너 연백리로 날아간다. 그래서 격강천리라고 했던가.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철책이 막고 서 있지만, 하늘까지는 닿지 않으니 날개 달린 새들은 남북을 오가는 데 자유롭기만 하구나. 곧 통일될 줄 알고 지척의 고향 땅을 눈으로만 보듬은 세월이 벌써 정전 70년을 훌쩍 넘겼다.

‘그날’ 이후 봄, 여름, 가을, 겨울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어머니 오실까 봐 대문도 잠그지 않고 강 건너 고향을 바라보며 격강천리 애환을 삭힌 이산의 세월에 가슴이 다 아리다. 분단 전에는 뱃길로 소풍도 갈 만큼 연백군과 교동은 왕래가 잦았다고 한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갔을까? 언덕배기의 설치물에는 통일을 바라는 해바라기꽃 무늬의 소원지가 가득하다. 나도 제주에서 백두까지 평화의 바램을 적어 매달았다.

시간이 멈추고 소원이 고인 대룡시장, 여전히 1960~7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마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준다. 대룡시장의 시간이 멈춘 이유는 섬이었기 때문만은 아닐테다. 살아생전 고향 땅을 다시 밟길 희망하는 실향민들의 마음이 거리의 시간을 붙잡아둔 것은 아닐까. 교동도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고 새들만이 철책 위를 넘나들며 남북의 소식을 서로에게 전하고 있다.

이른 새벽, 난정평화교육원 앞의 안개에 가득 쌓인 농로를 걸었다. 가을걷이를 끝낸 논밭은 밑동들이 가지런하고 길섶에는 찬 서리가 맺혔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니, 누군가의 발걸음으로 다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것이다. 경계의 의미를 선에서 공간으로 생각을 전환해본다는 미디어 아트의 발상은 특이했다. 선에서 평화의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이다. 우리의 평화가 조금씩 구체화 된다면 다시 개성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곳에서 우리는 여행자로 만날 것이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 하지만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된다 했듯이 나로부터 시작된 평화는 우리 모두의 평화가 될 것이다.

 

 

※ 본란 칼럼으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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