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시작, 그 탐색(3) 섬을 떠나 서울 살다 돌아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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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박목월 시인은 ‘나그네’에서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라 했지만 시 속의 길이지 사실의 길, 실제의 길이 아니다. 더욱이 외줄기 길은 시인의 상상 속의 길, 영락없는 허구다. 현실의 길은 길에 길이 수없이 잇대어 있다. 바닷길 히늘길이 있고 시골길 도시길이 있다. 흙길 아스팔트길이 있다.

나는 구좌읍 세화에서 태어나 그곳서 뼈가 굵은 순도 100% 제주토박이다. 제주사범학교(교대 전신)를 졸업하고 문교부 시행 교원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해(중‧고 2회) 자격증을 취득해 44년간 교단에 섰던 교직자다.

앞의 시에 나온 ‘외줄기’ 길에서처럼 곁길로 접어들면서 이탈을 경험했던 이력이 있어 모범생의 길을 걷지 못했음을 실토한다.

시내 공립 J고에 근무하다가 1984년 신설된 사립고로 전보하면서 순탄하던 교직의 길에 갑자기 암운이 잔뜩 덮이며 바람 몰아치는 험로로 돌변했다. 결국 승진을 둘러싼 학교재단과의 줄다리기에 걸려들면서 개교 준비에서 개교식 진행에 이르기까지 주관했던 나는 신분상의 일체를 포기하고 학교를 사직했다. 내게 속도 조절하며 기다리는 인내가 아쉬웠던 대목이 없지 않았을 것을 자인한다. 25년 몸담았던 교직의 길에서 벗어나왔다. 허탈하고 고독했다. 그러나 나는 절망지 않았다. 내가 선택했던 길이라 절망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고교에 재학 중인 두 아들이 있었다.

골목길을 더듬던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고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뜬금없이 길이 열렸다. 없던 길이었다. 서울에 있는 학원에서 나를 부르는 게 아닌가. 길을 더듬던 참이라 이것저것 생각지 않고 가족을 이끌고 솔가해 서울 반포 아파트에 전세 들어 이삿짐을 풀었다. 서대문 서울학원에서 시작한 학원강사를 서초 상아탑학원에서 내려놓았다. 학교를 떠나 서울의 다른 길 위에 있었다. 갈려난 샛길이었다.

길은 우연히 뚫리기도 한다. 학원으로 내가 사직하고 온 학교법인 이사장(L씨, 기업인‧당시 국회의원)이 찾아왔다. 뜻밖이었다. 신설 인문고인데 S대 진학성적이 저조해 학부모들이 나를 불러오란다는 게 아닌가. 숙고 끝에 학교 복귀를 결심했다. 편도일 줄 안 길인데 왕복으로 길이 바뀌었다.

“서울로 갑니다.”라고 절에 가 하직 인사를 하자, 웃으며 말씀하던 보살님 목소리가 귓전에 살아났다. “얼마 없어 돌아옵니다.” 열리게 된 길이었는가.

30년 전 얘기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새 두 아들이 대학 나와 가정을 가진 지 오래다. 나는 또 길을 바꿨다. 공립학교로 옮겨 학교장으로 교단을 마무리했다. 돈 없고 배경 없는 내게는 사투에 가까운 사뭇 힘겨운 역정이었다. 길이 워낙 가파르고 험한 세상에 운수 대통한 셈이다.

그새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지만. 안개 겹겹 가마득한데 사위로 섬 바다는 큰바람이 지나려는지 너울을 불러 어수선하다. 오늘은 안되겠다. 바람 자고 볕이 좋은 날 언덕에 올라, 몇 길에 걸었던 길들을 뒤적여 보리라.

어느새 나이 들어 눈이 흐리지만 닦으면서, 또 닦아내면서 바라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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