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그리고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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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순 문학박사/논설위원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이는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제정한 세계인권선언 제1조의 내용으로, 인권의 핵심을 담고 있다. 


‘인간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인 인권. 그 안에는 ‘내가 반드시 누려야 할 권리’와, 동시에 ‘타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도 포함된다. 내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인권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 즉 인권은 서로의 관계를 통해서만 성립이 된다는 의미이다.


인권의 근본을 서로가 지키고 존중하는 데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 곳곳에는 다양한 차별과 인권 침해가 존재한다. 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복지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다. 내가 돌보는 젠은 평생, 사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자신의 수입은 세계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보냈다. 인류애의 삶을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도 많이 받았다. 이처럼 인류를 위해 사느라 결혼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젠은 그 빛나는 과거가 무색하리만치 늙고 병들어 초라하다. 결혼하지 않은 젠에게는 자식이 없다. 가족이 없으니 젠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젠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가속도가 붙은 듯 인지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 요양원은 유명인사인 젠 덕분에 후원이 늘었을 텐데도 젠에게 들어가는 비품을 점차 끊어 갔다. 요양원 측은 내게, 다 쓴 기저귀를 잘라서 재활용하고, 뒤처리용 화장지도 아껴 쓰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젠은 늘 욕창을 달고 산다. 젠의 선행과 공헌은 까마득히 잊히고 성가신 짐처럼 치부된다. 아니 하나의 인격체임을 잊은 듯하다. 급기야 지금의 병실에 두는 것조차 낭비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요양원의 비인권적인 처사를 반대하고 극구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내 눈을 피해, 수용소와도 같은 열악한 시설의 치매 요양원으로 젠을 보내버린다. 마치 알려야 할 가족도 없는 치매 노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차피 죽을 사람,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최소한의 비용만을 들이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수소문 끝에 옮긴 요양원으로 젠을 찾아간 나는, 짧은 시간 사이에 인간의 존엄이 무너지고 가치 없이 죽어가는 그녀를,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리고 젠은 정확히 보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사회복지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추구하지만 이처럼 현장은,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다행이라 해야 할까? 이 이야기는 소설 <딸에 대하여>(김혜진)의 내용이다. 생의 끝자락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 힘없는 그들의 고통과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하지만 이 모두가 소설 속만의 이야기일까? 과연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복지 관련 시설은 안전할까? 


어떠한 순간에도 인간의 존엄은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떻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할지, 우리 사회의 관심과 지혜로운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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