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과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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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섭 편집위원

1975년 4월 북베트남의 침공으로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이 함락됐다. 이곳의 미 대사관에서는 많은 미국인들이 헬기를 이용해 탈출했다.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대사관 옥상에 있는 헬기에 타려고 줄사다리에 매달린 미국인들의 모습을.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던 장면을.

당시 세계 최강 미국의 참혹한 추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미국이 베트남한테 지다니…”

당시 미국과 대치했던 소련한테 진 것도 아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한테 속수무책 깨진 것이다.

베트남은 독립전쟁을 통해 프랑스를 굴복시킨 후 미국까지 제압한 나라가 됐다. 베트남인의 강인한 정신력과 불굴의 의지력이 빛났다.

▲20여 년 전에 베트남을 찾은 적이 있다.

어린 소년·소녀들이 몇 달러에 우표와 지폐, 동전을 담은 책자를 팔곤 했다.

또 전쟁의 상흔 탓인지 팔과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많이 보였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앞에서 장애인이나 노인들이 구걸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눈여겨 볼 점은 가게 주인이 가게 앞에 있는 장애인이나 노인을 쫒아내는 일은 볼 수 없었다. 가게주인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선함 때문에 그렇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인들은 한국인처럼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대기업들도 베트남에 많이 진출해 있다. 베트남에 장인과 장모가 있는 한국의 사위가 얼마나 많은가.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약점을 딛고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됐다.

▲베트남의 남녀 일꾼 41명이 제주에서 감귤을 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공공형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계절근로자비자(E-8)를 받은 이들은 내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위미농협 조합원 과수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남자는 일당 11만원, 여자는 일당 7만5000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일당이 베트남보다 5배나 많다며 만족해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1명의 이탈자도 없어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안착되고 있는 셈이다. 농민들도 만족스럽다. 업체를 통해 고용하는 인건비보다 일당이 낮기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감귤이 제주와 베트남 간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국에서 감귤을 따고 있는 베트남 일꾼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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