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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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논설위원

101세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아침이면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이건만 어머니는 이 시간을 불편해 하신다.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일을 잊으신 걸까. 게다가 나는 딸이 아닌가. 주기는 해도 받기는 불편한 게 돌봄의 본성인가 보다. 

2023년 10월 기준, 제주도의 전체 인구는 67만6119명, 65세 이상 노인은 12만264명으로, 노인인구가 17.8%이다. UN은 노인 인구비율이 14% 이상을 고령사회로 분류한다. 게다가 제주도의 100세 이상 인구는 296명으로, 남자 16명 여자 280명에 이른다. 여기에 나의 어머니, 김성춘 여사가 속해 있다. 제주도는 고령사회를 넘어 장수사회를 대표한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제주여인이다. 1923년도에 태어나 일제시대를 겪었고, 4·3과 6·25, 보릿고개를 지냈다. 해녀 물질을 하면서 2남7녀를 키웠고, 밀감나무를 심어서 대학도 보냈다. 미국에 간호사로 나간 제주도 아가씨를 며느리로 맞은 덕에, 볼티모어에서 17년간 이민 생활도 하였다. 81세에 홀로 한국으로 돌아와, 이중섭 화백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에서 보말을 잡으며 해녀의 삶을 마쳤다. 그후로는 무시로 “정옥아, 이 어멍 무슨일을 허코, 이?”라면서 일을 찾아 사신다. 작년 가을에는 과수원에 주저앉아 밀감을 따셨다. 올해는 ‘가달이 버짝해연 오몽을 못허키여(다리가 뻣뻣해서 움직이지 못하겠다)’라면서 울상이시다. 

하는 수 없이 마당의 잔디를 파내고 우녕팥을 만들었다. 배추씨를 뿌렸더니 어머니가 좋아하는 일거리가 되었다. 이제는 아침 저녁 김도 매고 물도 주면서 김장을 꿈꾸는 어머니. 일이 놀이보다 더 좋은 어머니는, 영락 없는 제주도 할망이다. ‘우영팟엔 홍시 송키가 돋암서사 혼다. 소시소철 퍼렁호게 송키가 커감서사 혼다. 철 잊지 말앙 노물씨도 뿌리곡 놈삐씨도 뿌려 두어사 국도 끓이곡 짐치도 돔앙 먹느녜(채마밭엔 항시 채소가 돋아나야 한다. 사시사철 파랑하게 채소가 커가야 한다. 철 잊지 말고 배추씨도 뿌리고 무씨도 뿌려두어야 국도 끓이고 김치도 담가서 먹쟎니)’라는 김종두 시인의 ‘우영팟’이 어머니의 일터가 되었다. 

최근 들어 제주올레 언니가 ‘보살핌의 발견’이란 책을 보내 왔다. ‘어머니의 만 백 년 삶을 잘 지켜냈으니, 앞으로는 널 위해 살라’는 엽서와 함께. 그리고 다음의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돌봄은, 기력을 다한 부모의 의복이나 기저귀를 벗겨 깨끗하게 하는 일일까? 진정한 돌봄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지지해 주고, 그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 주고,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잘 마무리하도록 보조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돌봄’이라는 이유로 백세 어머니의 걸음을 제약하고, 활동을 억제하고, 일상을 구속해 왔다. 그동안 무엇을 한 건가? 딸을 행복하게 하고, 도움이 되기 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이 책의 저자는 ‘잠들어 있는 풍부한 인격과 자원을 사용해 삶의 의미와 보람을 안겨드리는 게 진정한 돌봄’이라 한다. 어머니가 물질을 하고, 김을 매고, 고사리를 캐고, 감귤을 따면서 자식의 밑거름이 되는 게 행복하시다면, 그렇게 살아가시도록 해드리는 거다. 백년을 살아온 삶의 끝이 늙음이라면, 그게 어떤 모양이든 하늘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80세에 이 땅을 떠나시면서 ‘나는 만족하게 살았다’ 하시던 아버지의 미소가, 영원한 우리의 돌봄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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