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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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숙, 세화중학교 교감·수필가

행복한 사람일까.

환하게 웃는 얼굴이 눈부시다. 일상에서 눈을 부시게 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반면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종종 눈에 띈다. 배곯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발등의 불이니 행복이니 불행이니 논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요즘은 행복도 겨루는 것이라 여기는 분위기다.

사오십 년 전, 동무끼리 밀가루를 모아 풀빵을 굽곤 했다. 분에 넘치는 호사였달까. 돌담 너머로 노랗게 익어가는 귤을 보며 꿀꺽, 침을 삼키기도 했다. 못난이 귤 하나 얻어먹을 요량으로 과수원집 친구와 붙어 다녔던 기억이 선명하다.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라 마음자리까지는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인가. 비좁은 단칸방에 나란히 누워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꾹꾹, 빈 마음을 채웠던 걸까. 밥을 나눠 먹던 양푼엔 금세 바닥을 드러내는 밥보다 정이 더 푸짐했던 것 같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넘쳐난다. 모자란 게 없어서인지 배곯는 사람도 예전처럼 많지 않다. 넘쳐나는 게 먹거리 뿐이겠는가. 물질이 풍족해지면 마음 씀씀이도 넉넉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행복을 드러내려는 뒤틀린 욕망 때문인가. 가진 사람은 더 가져야 행복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열패감에 쌓여 있다. 그러다 보니 할퀴는 사람도, 상처 입는 사람도 점점 늘어난다.

혼자 잘 사는 것이 행복은 아닐 텐데 행복도 경쟁하는 시대가 됐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확인하려고 주변과 저울질하기도 한다. 섣부른 비교로 채워지기는 커녕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 아닐까.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과 불행은 한 몸 아니던가. 그러니 어느 날엔 불행감이 들이닥치기도 할 것이다. 지천으로 깔린 허명(虛名)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정체 모를 불행감을 맞닥뜨리게 되니 말이다. 이때는 물러서지 말고 불행 혹은 행복 따위에 대한 실체를 한 번쯤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하리라. 행복이라는 겉껍질 아래 억울하게 눌린 감정의 속살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나도 그동안 비교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많지 않으니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손꼽을 정도인 게, 생애 긴 세월을 참 박하게 살았나 싶다. 살아온 시간에 대한 예의를 갖출 법도 한데 그러하질 못했다. 다른 사람과 행복의 키를 맞추려고 했던 걸까. 텅 빈 것을 좇느라 마음마저 눈 멀었나 보다.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이 따뜻하게 포개지는 과정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게다. 행복뿐만 아니라 그 이면을 함께 껴안는 여유야말로 순도 높은 삶일 텐데 말이다.

행복을 겨루기 위해 무턱대고 줄을 서는 건, 이젠 시시해졌다. 솜사탕처럼 달콤한 행복이란 단어도 지나치게 도식적이지 않은가. 좀 더 본질적인 행복을 찾아가는 연습은 어떨는지. 눈을 부시게 하는 발광체가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반사체로 큰 어려움 없이 산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실체 없는 허명을 좇기보다는 풀빵 하나의 온기로 불행감을 다독일 수 있다면, 이 또한 하루치 행복으로 손색 없는 것 아닐까.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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