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경관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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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조 제주숲치유연구센터 대표·산림치유지도사/논설위원

첫눈이 내리는 날 한라산은 고요하다. 하얀 눈으로 덮인 백록담은 참으로 깨끗하고 순수하다. 혹여 깨끗함에 흠집이라도 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들어오던 햇볕마저 잰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그 자리를 회색 구름이 들어와 옅게 덮는다. 하늘과 한라산이 하나가 된다. 거대한 경관작품이 탄생한다. 

이런 걸작품을 연출하는 한라산 경관에는 지구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재료로 쓰인다. 이들 재료에는 대기를 이루는 기권이 있다. 땅을 이루는 지권이 있다. 물을 만드는 수권이 있다.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생물권도 있다. 여기에 저 멀리서 들어오는 태양 에너지와 어울리면서 짙은 색을 넣기도 하고 옅은 색을 넣기도 한다. 

재료 중에 기권은 대기 순환의 변화무쌍한 요술쟁이다. 작품연출의 귀재다. 하루가 다르게 이 모양 저 모양 갖가지 요술을 부린다. 하늘과 어우러지면서 구름을 만들고 눈을 만들고 비를 만든다. 시시각각 바꾸며 한라산의 원근을 자유자재로 이동한다. 구름을 만들어 한라산을 가리기도 하고 활짝 열어놓기도 한다. 뿌연 안개 장막을 치기도 하고 눈앞에 있는 듯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지권은 작품을 그려 넣는 지면이다. 그런데 평평한 지면이 아니다. 비스듬하게 경사진 지면이다. 흙과 암석으로 만들어졌다. 북쪽 등성이 지면은 깊은 기복 지형 탐라계곡을 넣었다. 남쪽 지면에는 산버른내 협곡을 뒀다. 그 사이사이에는 오름과 능선의 미를 살렸다. 그리고 한라산 꼭대기에는 화룡점정 백록담 바위를 올려놓았다. 그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산록과 중산간을 받침대로 삼았다. 한라산의 골격이며 형체다. 

그 지면에는 생물이 있다. 대표적인 생명체는 식물이다. 식물의 삶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경사진 등성이를 덮고 덮으며 수직적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고도에 따라 같은 종끼리 집단마을을 이룬다. 중산간 지대에는 사시사철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상록활엽수들이 모여 산다. 저고산지대에는 단풍으로 아름다움을 수놓는 낙엽활엽수들이 산다. 고산지대에는 상록침엽수 마을도 있다. 키 작은 나무나 초원지대도 있다. 극고산지대에는 돌매화 등이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들이 계절 따라 펼쳐내는 삶은 눈물겹다 못해 아름답다. 이들의 마음은 색깔로 전한다. 봄이 오면 아래에서부터 연초록을 내밀며 점차 백록담까지 이어간다. 여름에는 짙은 초록으로 왕성함을 뽐낸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산 위에서부터 붉은색을 내며 아래로 돌아온다. 식물은 그렇게 바쁜 일정이 마무리되면 하얀 겨울과 함께 깊은 꿈나라로 떠난다. 이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오는 한라산 식물 1년의 삶이다.

이렇게 펼쳐지는 한라산의 하루하루 경관을 우리는 본다. 아침 창문 너머로도 보고, 길을 걷다가도 보고, 사무실에도 보고, 오름 꼭대기에도 본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눈이 가는 대로 열려 있는 한라산 경관을 그렇게 본다. 

그리고 감탄한다. 우리도 지구시스템의 한 일원이기에 그렇다. 한라산 경관이 우리와 상호작용하고 있음이다. 한라산 경관이 뿜어내는 걸작품을 매일 보면서도 싫증 나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오히려 더 차분해지고 감동하고 숙연해지고 건강해진다. 이것이 한라산 경관치유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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