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돌과 바위에 예술을 새기다
바닷가 돌과 바위에 예술을 새기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27) 아롱 아롱 청굴물 위에 시와 음악이 흐르다 (上)

썰물 때 제모습 드러내는 신비로운 청굴물, 드론으로 담다…

시는 물결 되기도, 구름 띄우기도, 꽃시 뿌리고 가꾸기도…
지난 11일에 열린 바람난장에서 드론으로 찍은 구좌읍 김녕리 청굴물의 모습. (사진=제주드론협회 제공)
지난 11일에 열린 바람난장에서 드론으로 찍은 구좌읍 김녕리 청굴물의 모습. (사진=제주드론협회 제공)

계절은 항상 바쁘게 사는 우리들보다 한발 앞서 달린다. 가을 끝자락에 올라타 바다와 하늘과 산과 들의 숨결에 파묻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몸도 마음도 지쳐가고 있음이다. 

오래 전 바람난장에 몇 번 관객으로 쫓아다닌 적이 있다. 난장에 가면 문학과 음악, 춤, 노래를 접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격주로 토요일 열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저런 일로 한 동안 참여를 못했었다. 이번 11월 11일 바람난장은 구좌읍 김녕리의 용천수 청굴물에서 열린다기에 마침 주변 일들도 마무리 된 터라 좋은 기회다 싶어 난장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난장이 열리는 오늘은 하늘을 누가 말끔히 쓸어놓은 듯 구름한 점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비라도 오면 어쩌나 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청굴물을 만나는 기대감과 만나게 될 사람들, 시와 노래를 생각하며 김녕을 향해 달렸다. 내비를 찍으니 구엄에서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오늘은 나를 위로하는 날로 마음을 먹은 탓인지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감미롭게 들리고 길가의 나무들, 억새도 나를 위한 퍼레이드처럼 보였다. 

청굴물은 김녕리에 있는 용천수를 일컫는 말이다. 동네 이름이 청수동인데, 원래 지명이 청굴동이어서 청굴물이라 불린다. 청굴물은 지하대지 하부에서 지하수(용천수)가 솟아나는 곳이다. 용암대지의 하부에는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 점토층이 분포하고 있어 지표에 내린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고 해안선 부근에서 솟아나게 된다. 김녕 해안에는 여러 곳의 용천수가 있다. 그중에 청굴물은 차갑기로 소문이 나서 여름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찾는다. 특히 땀띠로 고생하시는 분들은 2~3일씩 묵어가곤 했단다. 한여름에는 동네 삼춘들이 삼삼오오 모여와서 시원하게 몸을 담그고 하루의 더위를 식히며 정담을 나누었으리라. 요즘처럼 선풍기, 에어컨도 없을 때 한여름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시원한 물이 최고였다. 무더운 여름날 밭에서 일하노라면 온몸에 땀띠가 솟기 마련이다. 그 땀띠를 재우는 것이 시원한 용천수였으니 마을 사람들에게는 고마운 물이 아닐 수 없다. 한여름에도 5분을 버티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용천수를 뿜어내는 청굴물은 뙤약볕 아래서 농사일에 지친 삼촌들의 쉼터였으며, 동네 소식과 각종 정보를 주고받던 소통의 장소였다.

몇 해 전 열대야로 잠못 이룰 때 자기 전에 도두에 있는 용천수를 찾은 적이 있다. 용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온몸의 열기가 식고 몸이 얼얼하다. 그때 곧바로 집으로 와서 잠자리에 들면 더위를 잊고 잠들 수 있었다. 

청굴물은 그 외양이 가히 예술작품이라 할 만큼 아름답고 독특하다. 바다 가운데에 샘물이 있다. 그 샘물까지 돌다리길을 20m 정도 따라 들어가면 원형으로 쌓은 청굴물을 볼 수 있다. 잘 다듬어진 돌로 원형으로 쌓아 건축미가 돋보인다. 위에서 바라보면 물에 잠긴 둘로 나누어진 프라이팬 모양 같다고나 할까? 바다에 떠있는 성같이 보이기도 한다. 칸이 둘로 나눠져 있는데 오른쪽은 남자, 왼쪽은 여자용이다. 여자들이 사용하는 곳은 깊이가 남탕보다 낮고 층계도 있었다. 이 청굴물은 바다로 들어온 곳에 위치해 있어서 밀물일 때에는 용천수 울타리가 물에 잠겨서 바다와 하나가 되고, 썰물 때에는 제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신비로움이 더하다. 오전 10시쯤에는 파도가 청굴물 울타리를 가까스로 덮고 있어서 다가가기가 망설여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닷물의 수위가 차츰 내려앉더니 11시가 지나니 청굴물의 몸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바람난장과 제주드론협회가 청굴물 위에서 찍은 단체사진.
바람난장과 제주드론협회가 청굴물 위에서 찍은 단체사진.

청굴물이 바닷물에서 몸체를 드러내자 바람난장 대표 김정희님이 돌다리를 지나 청굴물 가운데로 나간다. 청명한 날씨지만 짭쪼름한 바닷바람은 반가운지 그녀의 옷깃을 흔든다. 인사말에서 오늘은 특별히 ‘드론과 함께하는 바람난장’이라며 제주드론협회 회원들이 함께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머리 위에서 빙빙 도는 물체, 바로 드론이었다. 무대의 주인공과 관객들을 향해 반짝이는 빛으로 무언의 인사를 한다.

여는 시 이병률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을 김정희 낭송가가 중저음으로 낭송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파도가 청굴물의 벽을 넘나들더니 이제는 주춤주춤 다가오다 멀어진다. 청굴물과 파도는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일상이 된 듯 서로가 덤덤하다. 파도의 흔적은 바닷가의 수많은 돌들과 바위 깊숙이 새겨져있겠지. 

이어서 한기팔님의 ‘섬’을 이정아 낭송가가 낭송했다. 

이정아 시 낭송가가 시를 낭송하는 모습.
이정아 시 낭송가가 시를 낭송하는 모습.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고

돌아서면
누구나 그 뒷모습이 쓸쓸한,
썰물 끝에 나앉은
잊혀진 풍경 같은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섬입니다
마음속에
한조각 구름을 띄우고 살아가는
내가 그 섬입니다.

저마다 마음속에 
한조각 바다를 키우며 살아가는 
섬 속의 섬입니다.


얼마 전 고인이 되신 시인님이 떠올랐다. 지금쯤 어느 바다의 섬이 되어 조각구름을 바라보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부드럽게 밀려왔다 스르르 밀려나는 물결 위로 시가 흐르고 있다. 저마다 섬이 되어 그 위에 구름을 띄우기도 하고 그 섬에서 꽃씨를 뿌리고 가꾸기도 한다. 썰물처럼 떠나버린 것들을 그리워하다 다시 밀물로 찾아드는 것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섬, 그런 섬이고 싶다. 청굴물은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여름에는 마을 삼촌들이 찾아오고 사철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며 함께 놀아주니 말이다.   

글=김순신(수필가·동백문학회 회장)

▲사회=김정희 ▲시낭송=김정희, 이정아, 이혜정 ▲팬플루트=서란영 ▲참여작가=조선희, 이창선, 김순신 ▲사진=홍예 ▲음향=장병일 ▲제주드론협회 회원 ▲총감독=김정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