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부터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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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제임스 릴리라는 정치학자였다. 제임스 릴리는 1928년 중국 산둥성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성장했다. 열 살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정치 외교 분야를 공부했고 CIA에서 30년을 근무한 뒤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했다. 그리고서 중국대사로 가게 된 것이다.

중국대사로 부임한 1989년의 6월 4일 중국 북경에서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천안문 시위가 일어난 그때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중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새로운 시대와 변화를 추구하면서 고르바초프를 맞이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모처럼 온 세상에 자신을 내보이려 하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시위를 일으켰기 때문에 천안문의 상황은 많은 나라에서 찾아온 TV 카메라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다. 중국 공산당은 이를 무척 당혹스러워했고 강경하게 진압해 나갔다.

바로 그 시기에 천안문의 현장을 직접 지켜보았던 미국대사가 제임스 릴리였다. 민주화 시위와 강경 진압을 지켜본 그는 중국 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고, 중국의 반체제 인사가 찾아와 신변 보호를 요청했을 때 적극 보호해 주었다. 중국 정부가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심각한 외교 문제가 생겨났다.

그가 미국대사로서 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보호해 주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필자는 제임스 릴리의 이런 측면을 생각하게 됐다. 중국에서 태어나 열 살까지 살았던 사람이 미국대사가 됐는데 그의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다면, 그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중국의 반체제 인사를 지켜주려고 했던 것일까? 물론 미국대사로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이유도 있었을 듯하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요 영혼의 상당 부분이 중국인이었을텐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눈으로 지켜본 천안문과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은 어떻게 보였을까? 가을이 깊어가서 그런지 “그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가 있었다.

천안문 사태 이후에 쓴 논문에서 제임스 릴리는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중국이 민주화가 돼야 할 텐데 밖으로부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위험하다. 중국에 가까우면서 민주화가 돼 있는 홍콩이나 대만이나 한국으로 하여금 가까운 관계를 맺게 해 영향을 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으로부터 민주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 “밖으로부터 강제적인 힘으로 다가가서 깨트리려고 해선 안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들 안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게 해야 한다.”

많은 생명이 피 흘리는 현장을 지켜본 후에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이 참 새롭게 생각됐다. 미국 대사로서의 외교전략이기보다는 중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살았던 영혼으로부터의 사랑과 분노와 저항이 뒤섞인 음성은 아니었을까?

오늘날의 중국을 바라보면서도 역시 예전처럼 그가 그렇게 말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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