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흔들리는 어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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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 논설위원

한 아주머니가 해산한 암소에게 주려고 콩을 갈아서 두부처럼 만드는 과정이 텔레비전에 보였다. 어미 소의 몸을 풀어주고 젖도 잘 나오라고 영양식을 주는 아주머니와 그 것을 받아먹는 암소, 유순한 그들의 눈에 자비로운 모성이 가득차서 물결 짓는 듯 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며, 어린 생명체를 지키는 길 또한 희생과 봉사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는 갖가지 연민의 감정과 눈물로 연결돼 부르기만 해도 사람들은 대부분 가슴이 미어진다. 또한 어머니란 경제 활동과 더불어 육아와 가사 등 겹쳐지는 노동에 자신의 꿈은 제일 밑에 접어두고, 과중한 부담을 안은 채 험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찌 보면 최악의 상황에 처한 사람이다. 어머니 역할을 하라고 하면 누구든 두렵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며, 감당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결혼은 그 시점부터 이혼 가능성이 파생하는 복잡다단한 상황이다, 요즘은 결혼이나 이혼을 당사자들의 문제로 비교적 단순하게 여기지만, 아직도 여성에게 결혼에 대한 결정 권리를 주지 않는 나라도 있다. 남성이 삶의 중심인 문화에서 결혼은 여성을 옭아매는 완강한 구속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란에서는 여성들이 이등 시민으로 대우받는 것에 맞서서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여성은 혼자 여행하거나 이혼할 권리가 없고, 머리카락을 드러낼 자유도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을 감추든 드러내든 삭발을 하든 기르든 모든 사람이 자유라는 세상과, 머리카락을 여성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로 만들어서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세상이 병존한다. 

암스테르담 같은 도시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결혼하지 않는 남녀가 더 많았으며. 우리 사회에서도 학교 졸업과 취업 후 다음 단계는 당연히 결혼이라고 믿던 시대는 지났다. 결혼은 선택의 하나로 더 이상 젊은이들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노쇠하여 흔들리는 어금니처럼 사회의 오래된 관습이 위태로워졌다.

결혼과 육아로 인해 여성이 겪는 부담은 개인이 홀로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고만 할 수는 없다. 1900년 초기부터 여성 해방 운동가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서 필수인 경제적 자립은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태어나는 아기는 개인뿐만 아니라 인류의 자식으로 돌보고 책임지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여성들은 가문의 대를 이을 자식을 낳거나, 가사 노동을 책임질 의무 등은 관심 없다. 엄마들 세대가 감당하던 희생적인 삶을 거부하고, 구속받지 않는 결혼 생활과 자녀 양육을 여성에게만 떠맡기지 않는 사회를 원한다. 경제 문제는 사랑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음을 확실히 파악하며, 결혼을 지속시키기 위해 치르는 값 비싼 희생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세대이다.

결혼 상태는 온갖 아픔과 슬픔이 섞여들지만 때로 소속감을 주면서 아늑하여 소중해 지고, 누적되는 가족의 추억을 돌아보면 차마 부숴 버릴 수 없는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오래 살아남는 결혼 생활이 더욱 희귀하고 경이로운 것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근본을 이루는 인간성인 사랑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삶의 뿌리로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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