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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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칼럼니스트

내 기억 속에는 아직도 지난 여름의 열기가 악몽처럼 휘감기는데 벌써 가을 막바지다.

11월은 노년같이 허허롭다. 단풍마저 떠난 허허벌판에 달랑 한 장 남은 여분의 달력까지 외로움만 자아낸다. 맞닥뜨린 지난 여름의 더위는 헤쳐 나가기가 어려워서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막상 지나고 나니 힘들었던 일들도 달콤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인생살이 면면도 그러하다. 지난 시련들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각색되곤 하니. 그러나 추억하기에는 좋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 그 때처럼 다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을 듯하다.

기시미 이치로는 ‘늙어갈 용기’에서 인간의 생애를 네 단계로 구분했다. 1단계는 학습을 통해 1차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 2단계는 일과 가정에 정착하는 시기, 3단계는 2차 성장을 통해 삶을 재편성하는 시기, 4단계는 생을 마무리하는 노년기이다. 그 중 3단계는 40대에서 70대 중 반까지로 인생살이의 중심 시기이다. 이 단계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기도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나 성과에 대한 만족감이나 회의감, 다른 길로 가보고 싶다는 갈망과 망설임, 희망과 체념이 동시에 찾아든다. 이 시기를 잘 다스리면 아름다운 노년을 향해 무난히 다가갈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면 다가오는 노년이 불안해진다. 인생 3단계가 생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된다. 이 시기에 닥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 단계에 진입하면 지난 삶에 회한이 일며 늙어가는 자신이 초라하게 여겨질 뿐이다.

그래서 생애 3단계를 넘어설 즈음이면 변화를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선은 지난 삶의 미련에서 벗어나 오직 다가오는 앞 날에만 집중하라 한다. 또한 ‘나도 알 만큼 안다’는 식의 자만심이나 권위 의식도 과감히 버리라 한다. 이를테면 ‘누구의 말인가. 누구의 글인가.’ 보다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춰 수용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성장시켜나가는 게 지혜로운 삶이라 한다. 거기다 욕망으로 내달리는 삶의 속도를 줄이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여유를 찾다 보면 자신과 주변이 보이고 나이 드는 게 가치 있는 변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노년에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은 흔치 않다. 육체적으로 약해지면서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피폐해지기 쉽다. 경제활동도 제대로 못 하고 일상생활도 불편하다. 그래서 성경에도 ‘하느님이여, 늙은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고, 힘이 약할 때 나를 떠나지 마소서…’란 기도 구절이 나온다.

김열규도 ‘노년의 즐거움’에서 이런 불안한 노년은 황혼 노을처럼 살라 한다. 찬란하기보다는 고요하고 차분하게, 잔잔하고 고즈넉하게, 가락에 빗댄다면 안단테 칸타빌레로. 위대한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마무리하는 코다처럼 장려하게 숨결이 이어지는 그런 분위기로 살라 한다.

그렇다. 노년이 되면 지난 시절의 성패나 노욕에서 벗어나 남 따라 살기보다는 오직 자기만의 색깔로 황혼 노을처럼 은은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 사노라면 노년은 절로 황혼 노을처럼 곱게 물들여진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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