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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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휘탁, 휘탁” 이게 무슨 소린가.

소리에 힘을 보태니, 사방으로 마구 튄다.

마주 보면서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번갈아 가며 도리깨를 휘두른다.

멍석 위에 깔아놓은 콩대, 콩이 콩깍지에서 하늘 높이 튀면서 파아란 세상을 만난다.

도리깨가 구성지게 마당질 소리를 만들어가고, 타작노래는 들녘에서 거둬들인 콩의 풍요로움을 노래하며,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마련하는 가족들의 풍요로운 겨울철 밥상으로 눈앞에 다가선다.

도리깨질하는 일은 쉬울 것 같지만, 보기보다 그리 쉽지 않다. 도리깨는 단단하고 질긴 윷노리 나무를 사용해서 만든다. 일꾼이 많을 때는 이웃집의 것을 빌려와서 힘을 보탰으니. 소리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구성진 노래 소리와 함께 작대기로 콩대를 뒤집는 일은 할아버지가 맡는다. 또한 콩대를 멍석 밖으로 내치는 일도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타작된 콩깍지를 잘 모아두었다가 소죽을 끓일 때 사용한다.

혼자서 농사를 다 지은 것이 아니기에 밭갈이 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소를 위해 소죽을 끓여 힘을 북돋아 주었다.

손주의 역할은 어떠한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멍석 밖으로 튀어나간 콩알을 한 개 한 개 주어서 멍석 안으로 집어넣는다. 이를 보고 외할머니가 손주에게 말을 건낸다. ‘콩 마당질 사돈집까지’ 간다는 제주의 속담이 있단다. 콩 수확철엔 할머니가 들려준 그 말이 기억나곤 한다. 콩알이 멀리 멀리 튀겨나감을 실감나게 잘 드러내고 있다.

텃밭에서 노랗게 익은 콩대를 꺾으면서 가빠를 깔아놓고 동백나무로 만든 부지깽이로 도리깨 작업처럼 타작을 준비하고 있다. 아주 원시적으로 돌아가서 타작하는 일이다. 6월 초에 뿌린 씨앗이 다행스럽게도 가을까지 잘 자라줘서 하늘에 감사드린다. 농사 절반은 하늘이 지어주었으니. 성급한 생각일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손에 들어와 봐야 계산을 맞출 수 있는 것처럼 수확은 얼마나 될까. 값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가을 들녘이 내준 콩은 가족들의 살점이 었다.

이제 초가집도 없고 헛간도 사라졌다.

헛간에 보관해뒀던 도리깨는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뿐, 고향을 떠난 도리깨에 대한 옛정이 아직도 가슴에 뜨겁게 흐르고 있다.

눈 내리는 날 안성맞춤인 메뉴가 내겐 콩국이다. 배추를 북북 잘라 넣고 소금 좀 치며 끓여질 때까지 자리 뜨지 않고 잘 저어야 한다. 넘치면 낭패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전해주신 지혜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보글 보글 잘 끓는다. 소싯적 가슴에 불어넣은 온기가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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