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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연전연패, 낯을 들 수 없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참사다. 국내에 중계하지 않았으니 배구 팬들이 얼마나 실망했을 것인가. 올림픽에서 주최국 일본을 8강에서 당당히 물리쳤던 기억이 생생한데, 차라리 안 보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사실 올림픽을 끝으로 월드 클래스 김연경 선수가 국가 대표를 내려놓으면서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우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추락할 줄 누가 알았으랴. 얼마 뒤 이어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팀의 나약한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끝내 무명의 베트남에 깨어지고 북한에마저 쫓기다 세트를 내주고 가까스로 굴욕을 면하면서 네팔에 이어 2승째를 챙겼던가. 그 이상은 앞으로 한 발도 떼어놓지 못한 채 주저앉지 않았잖은가. 이래저래 2023년은 명예롭지 못하게도 한국 여자배구 역사에 치욕의 한 해로 기록될 수밖에 없게 됐다.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가 대책 없이 거듭 냉가슴만 쓸어내리는 여자배구의 참상을 사실로 목도하면서 통렬히 절감했던 것이 선수들 교체의 중요성이었다.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일인데 손을 놓고 있었으니 한심한 일이다. 이를테면 제 아무리 강한 서브라 할지라도 선수는 서브는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명색이 국가대표 아닌가. 서브의 효율을 따지기 전에 받아놓고 봐야 하는 게 배구다. 서브를 받는 데서 시작되는 게 배구이기 때문이다. 우선 서브로 날아온 공을 받을 수 있어야 경기가 되는데 받아야 할 서브도 받지 못하니 문제다.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다.

아시안게임에서 해설을 맡은 왕년의 에이스 김연경이 현장에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참담했을 것인가. 눈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할 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정규시즌이 지난 10월 14일 개막됐다. 여러 선수들이 이곳 저곳으로 소속 팀을 옮기며 출발하는 모습이 일단 신선해 보였다. 팀마다 외국 선수에 아시아권 선수까지 한 명을 더 포함하게 되면서 우리 선수들이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배구계 내부에서 우리 배구의 부활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을 법도 하지 않은가.

운동은 못 하면서도 파적거리로 중계방송은 무척 즐긴다. 오랜만에 흥국생명과 현대건설 경기를 시청했다. 흥국생명에 남아 뛰는 김연경 선수를 한눈팔지 않고 지켜봤다. 아직도 현역 시절 못잖다. 파괴력이 강한 공격, 능숙한 수비력, 누가 88년생 선수라 할까. 늘 웃는 표정으로 후배를 격려하며 이끄는 리더십까지, 참 훌륭한 선수다. 그는 막을 수 없는 창, 상대의 집중 마크를 뚫고 첫 세트를 내줬음에도 팀의 역전승을 기어이 견인해냈다. 저런 실력이 한국의 여자배구를 다시 일으키는 힘으로 작용할 수는 없을 것인지, 경기가 끝났는데 한참 멍해 있었다.

한 선수의 빈자리가 이렇게 클 수 있는 걸까. 젊은 선수들이 김연경 선수처럼 성장했으면, 그래서 하루빨리 한국 여자배구가 옛 명성을 되찾아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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