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初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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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처음 먹은 마음을 초심이라고 한다. 반드시 지키겠다는 결지(決志)가 결의를 넘어 숭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대개는 그렇다. 처음엔 부지런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해이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나중 삼가시기를 항상 처음처럼 하십시오.” 명재상 한명회가 죽기 전에 성종 대왕에게 남긴 말이다. 초심을 잃어선 안된다는 마지막 충언이었다.

부연하거니와,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애초에 지니고 있던 마음, 처음에 간직했던 순수한 의도와 품었던 마음가짐이 초심이다. 그러나 실제로 실행엔 만만찮은 어려움을 만난다. 현실의 벽과 난관에 마주치면서 달라진다. 그 달라짐이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 때 ‘그 사람, 초심을 잃었다.’고 말하잖는가. 열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마음가짐이 풀어졌음을 통렬하게 지적하는 말이다.

특정 개인의 경우도 적지 않지만, 정치를 잘해서 민중이나 국민을 이롭게 하겠다는 마음을 곱씹었으나, 권력의 맛이 들면서 타락해 간 군주나 정치인을 가리키는 예가 허다하다.

그렇게 굳게 다짐하던 초심을 왜 잃는가. 대체로 매너리즘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고 시간이 지나도록 같은 노력과 행동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 그게 일상이 돼버리면서 마침내 매너리즘을 불러온다. 초심을 잃고 흐지부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외부 환경의 압박에 부대끼면서 초심까지 잃어버린다. 그 순간, 도태되거나 경쟁 대열에서 밀려나 탈락하는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

문단이라고 예외겠는가.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신인 시인, 작가들의 환호로 한때 주변이 떠들썩하더니 2, 3년을 고비로 견뎌내지 못하고 온데간데없이 꼬리를 내려버린다. 이런 허황할 데가 있으랴. 우리의 영혼 위에는 얼마나 많은 기분이 떠도는가. 등단할 때의 설렘과 흥분은 한때의 기분이었다는 얘기인가. 아쉽고 안타까운 대목이다. 목월 시인은 측근의 제자들에게 등단해서 5년이라는 기다림과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등단할 때 굳게 다지고 다졌던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완곡하게 암시함일 것이다.

내게도 초심이 밑동째 흔들리던 위기의 한 때가 분명 있었다. 써도 써도 글이 그만 그만일 때, 자신을 엄습해 오는 문학적 재능의 회의감. 쓰다 봐도 제자리를 맴돌 뿐 나아감이 없는 무기력함 앞에 주저앉아 버렸다. 답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책상을 밀쳐 버리고 떠돌았다. 갑자기 쓸쓸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고독이었다. 그것은 나를 일으켜 세울 답이 아니었고, 점령당해서는 안될 결핍 같은 것이었다.

수필에 시를 포개놓는 문학의 외연 확장을 결심했다. 초심을 잃을 위험성에 또 하나 폭발성을 얹기로 한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전략은 절묘했다. 이들 중 하나만 잃어도 절망할 것 같았다. 죽자사자 쌓아 온 인생의 금자탑을 허물 수는 없었다. 아귀 앙 다물고 팔 걷어붙이고 다시 일어섰다. 버티고 서 있을 만큼 내 뼈대는 사뭇 강건했다.

초심을 잃어서는 안된다. 작품집 스무 권에 열정을 쏟았다. 여든의 능선에서 적어도 나는 등단하던 30년 전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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