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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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관훈,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논설위원

봄이 오면 한라산 기슭 여기저기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날이 어두워지면 불길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치 커다란 꽃무늬가 밤하늘 아래 수놓은 듯 일대 장관이었다.


제주에는 봄철 중산간 지역 휴한지나 공동목장 목야지에 초목을 태우는 풍습이 있었다. 진드기 등 각종 병해충을 없애고 부드러운 풀이 자라게 해 소나 말이 뜯어먹기 편하게 하려고 불을 놓았다. 이같이 방목을 목적으로 불을 놓아 초지 개량하는 일을 ‘방애(放火)’ 혹은 ‘들불 놓기’라 했다. 


방애는 이른 봄 들판에 쌓였던 눈이 녹아 마른 풀이 드러날 때 했다. 새 풀이 돋아나면 소나 말을 방목해야 했기 때문에 그 전에 불을 놓았다. 불 놓기를 하면 해충을 없앨 수 있을 뿐 아니라 새 풀이 잘 돋아난다. 


농약이 없었고 대대적으로 초지 조성작업을 벌일 형편이 못 되다 보니, 마른 풀과 해충을 한꺼번에 없애기 위해 불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탓에 방애는 소나 말을 방목하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연례행사였다.


캐나다나 하와이 산불처럼 한라산에 불을 지르면 불길이 한없이 번져 산야가 전부 타버릴 것 같지만 밀림 속에는 매년 떨어져 쌓인 나뭇잎이 두껍게 쌓여 있고 언제나 습기가 있어 불이 멀리 번지지 않는다. 그래서 불을 놓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 놓기를 할 지역 외곽에 미리 물도랑을 쳐서 ‘상잣담’으로 불이 번지지 않게 했다. 보통 ‘상잣담’ 밑으로 5~6m 간격을 남겨 놓고 그 폭을 반 팔 간격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쟁기로, 밭을 갈거나 여의치 않으면 그 간격으로 불을 붙였다. 이렇게 대비하고 난 뒤 목장에 불을 붙였다. 


공동목장에서 방애 놓기는 해마다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덕에 가시덤불과 잡목이 제거되어 2차 초지가 형성되고 유지되었다. 하지만 방애 놓기는 산불 방지와 삼림 보호를 이유로 1966년부터 금지되었다.


이로부터 30년이 흐른 1997년부터 제주의 방애 놓기 목축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승화한 ‘들불 축제’를 매해 개최하고 있다. 어느덧 제주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전국의 산불 확산으로 불놓기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고 환경보존과 기후위기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일어 적정성 논란이 생겨났다. 이에 대한 지혜를 모으기 위해 민간 중심의 숙의형 원탁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그 결과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제주도의 대표축제에 대한 도민사회 논의의 장이 열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갑고 기쁘다.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지금이라도 민간 차원에서 들불 축제의 의미와 상징을 되새겨보며, 고칠 건 고치고 바꿀 건 바꾸는 기회가 마련된다니 바람직해 보인다. 


원래 그랬다. 공동목장에 불 놓기를 하기 위해서는 미리부터, 마을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계획을 세웠다. 먼저 적절한 날을 고르고 필요 인원 동원 계획을 짠다. 불 놓기를 할 날이 되면 날씨를 살피고, 바람 방향과 그 변화 가능성을 잘 가늠해 불을 놓고 번짐을 방지했다. 조합원은 당연하고 마을 사람 모두의 의견과 지혜를 모았다.


 방애 놓기의 상징과 의미를 올바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루어졌으면 한다. 그런 다음에 더 다듬고 잘 갖추어진 들불 축제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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