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 곧 전통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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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해마다 꼬박꼬박 전통적 방식으로 제사 명절을 지내왔다. 지금까지 그래 왔다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럴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실인즉,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어느 집의 경우, 어머니가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고 선언한 뒤, 가족회의를 열어 안하기로 결정됐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집안 여성 구성원(특히 며느리)들이 차례상을 준비하느라 불필요하게 고생해 왔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왔었다는 얘기다. 대신, 추석 명절 전후로 가족들이 한데 모여 가볍게 외식할 것으로 대체했다 한다. 무엇보다 가족끼리 모이는 일이 중요한 만큼 명절이 갖는 의미가 그쪽으로 더 기우는 것 같다. 그들 가족 언저리에서 흘러나온 말이라 한다. 소위 집안의 며느리들이 그때 족족 부대껴 온 명절증후군에서 이제야 간신히 풀려나와 한숨 돌리게 됐다는 목소리 아닌가. 인제 살겠다고 오랜 속박에서 해방이라도 됐다는 듯이.

가족 불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해오던 명절 차례 전통이 우리 문화 속에서 사라지거나 사라지려 하고 있는 작금이다. 어느 통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앞으로 차례를 지낸다 43.7%, 안 지낸다 56.4%. 눈을 의심했다.

그냥 그리된 게 아닐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는 것으로 분석된다. 명절을 전후해 모였다가 얼굴 한 번 보고 밥 먹고 황금 같은 연휴 기간을 각자 취향에 맞게 쉬는 방향으로 정착해 가는 추이로 보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꿈도 꿀 수 없던 일이 아닌가. 귀성객으로 난리를 치르던 고속도로의 교통흐름도에도 없던 여백이 보이질 않는가. 놀라운 일이다.

시대 조류를 따라 전통도 변한다. 그런데 그 전통은 반드시 연속성을 필수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사라지거나 망각됐던 전통이 후대에 다시 전통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주관적 가치 판단에 의해 재평가되는 경우다. 문화유산 중 재평가되는 게 전통이므로 단순히 옛 것은 인습(因襲)이고 누습(陋習)일 뿐, 전통이 아니다. 일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다. 시식(時食) 삼아 고사(告辭)하고, 공감하니 전통으로 이어진다.

내가 커올 때만 해도 명절이 다가올 즈음이면, 어머니와 누님의 걸음걸이가 예사롭지 않았다. 깊숙이 넣어 뒀던 놋제기들을 꺼내놓곤 쑥돌가루를 묻혀가며 힘을 주어 닦았다. 촉촉이 젖은 산도짚으로 퍼렇게 슨 녹이 닦여 반들반들 빛을 냈다. 깔축없이 한나절이 걸리던 그 일이 끝나야 ‘햐, 며칠 뒤면 드디어 명절이구나.’ 했다. 흉년애도 곤밥을 먹는 명절! 떡이며 고기 산적이며, 만드는 어른들도 싫어하지 않았다.

두 아들에게 제사 명절을 분담시켰다. 아내와 나는 단출하게 하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힘들 테다. 해오던 수준을 맞춘다는 건 부담 아닌가. 그래도 말없이 잘 지내고 있다. 음복하고 나오면서 수고했다고 한마디 다독거라면 활짝 웃는다. 우리 집엔 아직 차례에 대한 민원(?)이 없다. 옛 것, 곧 전통이 아니라지만, 제사 명절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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