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을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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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기 시인

텃밭 고추가 붉게 익어간다. 아무리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가을이 오긴 오나 보다.

입추 처서 백로까지 지났으니 분명 가을일 텐데 9월 폭염주의보라니! 나의 불평을 알아들었는지 어제부터는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살갗을 타고 든다.

뜨거운 가을 햇살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탱글탱글 익어가는 온갖 과일들, 고개 숙이는 벼 이삭의 속삭임을 들으며 막걸리 한 사발을 맛있게 들이켜는 농부의 주름진 웃음을 생각하면 뜨거운 햇살이 밉기만 한 것은 아니다. 벌초하는 예초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추석이 멀지 않으련만 30도를 넘는 폭염주의보는 더위에 지친 사람을 헐떡이게 한다. 감나무 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유자 열매가 주먹만큼 커지는 것을 보면 땅은 가을인데 하늘은 가을이 싫은가 보다

정상이 아닌 것을 이상이라 한다.

이상기후라 하는 것을 보면 지구가 이상해져 가는 징후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온난화로 인한 폭염 폭우 폭설로 얼룩진 지구촌의 재난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구촌 기후가 비정상이다 보니 이 땅에 사는 사람들도 이상해지나 보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충동적인 묻지 마 살인도 그중 하나이다. 이렇게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웃음을 자아내는 일도 있으니 세상은 살만하다. 어느 당 대표의 단식이 출퇴근이라고 해서 실컷 웃었다. 우울한 세상에 웃을 일을 만들어주었으니 국민을 진정 생각하는 정치가인가 보다.

한낮 햇살이 뜨겁더라도 가을은 오고 온갖 과일은 익어간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는 어느 여가수의 노래에 위안을 받는다. 머잖아 낙엽이 수북이 쌓인 숲길을 걸으며 ‘시몬, 너는 좋으니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라는 구르몽의 옛 시구를 되뇌며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

이제 가을의 바쁨 뒤에는 멀지 않아 겨울의 휴식이 온다. 설령 괴로워도 살 만한 세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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