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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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시인/ 논설위원

사람들은 자연물상에 생각을 반영시켜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북미 원주민들의 산에 대한 전설에 어떤 부인은 남편이 못마땅해서 떠나려고 집을 나섰다. 
말릴 것으로 믿었던 남편은 뒤 돌아보아도 달려오지 않았다. 걷던 여인은 길가에 주저앉아서 남편의 집 쪽을 바라보다가 산이 된다. 북 쪽에 서있는 높은 산은 그 남편이고, 남쪽에서 그 산을 올려다보는 작은 산은 그 부인이라고 전해진다.  

중국 장가계 천자산에 수많은 바위들도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명나라에 저항하다가 죽은 토가족 왕 바위는 오늘도 책을 읽는 중이고, 모여서 솟은 가는 돌 무리는 어필봉, 즉 왕이  사용하는 붓들이다. 험한 바위 끝에 달린 사람 닮은 작은 돌은 구름 속에 서있는  약초 캐는 할아버지, 꽃바구니를 가슴에 안고 있는 듯 서있는 바위는 꽃을 뿌리는 선녀, 세자매봉이라는 바위 셋은 아이를 등에 업은 언니, 그 옆에 아기를 안고 있는 둘 째 언니, 마지막으로 아기를 임신한 막내라고 한다. 

왜 우리는 자연 형상에 이런 저런 현상을 투영시킬까. 인간으로 태어나기 전 자연의 원소로 존재했던 기억이라도 더듬는 것인가. 요즘은 사이버 공간에서 활동하는 인간상 만들기가 유행인 듯하다. 사용자를 대신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인터넷 가상현실 게임이나 채팅 등에서 활용하는데 바로 ‘아바타’이다.

아바타는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하강’을 뜻하는 아바타라(Avatara)에서 왔으며, 힌두교 비슈누 신은 다양한 형상으로 나타나 인간을 구원하는데 그 변신한 모습들이 아바타라는 것이다. 
닐 스티븐슨이 공상과학 소설 ‘스노우 크래시 Snow Crash’에서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가상의 몸을 아바타라고 하면서 대중화되었다고도 한다. 

요즘 메타버스는 현실보다 더 큰 만족감을 가상세계에서 맛볼 수 있게 한다. 원하는 대로 아바타를 움직여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달리 만족한 삶을 누리게 하니, 사이버 공간은 인간정신을 가두어 스스로 육체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인류가 많은 것을 기계에 의존하게 됐지만, 자연을 떠나서 기계와 인간만으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우리 몸이 자연이기에 삶은 인간과 자연환경, 그리고 기계의 기능들이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가에 크게 좌우된다. 지구 환경을 파괴하며 파멸을 향해 가는 우리들의 현재 방식은 절대적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앞으로 인간의 창조력은 인공지능과 합해지면서 점점 확장돼서, 사이버 공간에도 땅에서 우는 귀뚜라미와 하늘에 뭉게구름, 계절의 순환과 미묘한 천지의 기운을 잡아 둘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미래의 아바타들이 지구를 벗어난 어느 지점에서 쏟아지는 태양빛을 모아 전기로 바꾸어 지구로 보낸다면, 인류는 그 전기로 풍족해 더 이상 원자력 발전소나 핵 오염 걱정은 사라질 수도 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해서 공중 전원을 만들어 곡식을 기르고, 떠다니는 벽으로 도시들의 침수를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현재 인류가 아는 것이 많아도 모르는 것이 더 많으니, 생명의 거대한 나무를 사이버 공간에도 접목시켜 그 그늘 쉼터에서 꽃처럼 나비처럼 인간의 분신 아바타들이 활약해 인류를 무덤에서 구하는 미래, 이는 단지 꿈에 불과할까.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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