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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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이중섭미술관 학예연구사/논설위원

바닷빛이 찬란한 제주도 남쪽 도시 서귀포에서 화가 이왈종은 30년을 넘게 작업하고 있다. 1989년, 당시 미대 교수였던 그는 심사숙고 끝에 안식년을 택해 서귀포에서 1년을 지냈다. 1990년, 현실과 예술 사이의 방황을 끝내고 마침내 그는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 물빛 고운 서귀포에 정착했다. 지금은 서귀포가 이주민들이 수없이 오가는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때는 바람 많은 땅, 여전히 변방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삶의 근거지를 옮겨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트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산책길에서 만난 나무들과 무성한 야생초들이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그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상생의 원리를 보았다고 한다. 

환경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사람의 가치관은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 이왈종은 서귀포에서 사람들의 힘들고 고단한 삶도 유머와 위트로 재치있게 풀어냈다. 그가 택한 해학은 유쾌한 감정의 은유로써 모든 일상을 즐거움으로 치환하는 미학적 장치가 되었다. 그는 제주 자연에 사랑, 낭만, 거기에 꿈을 실어 보기만해도 행복한 제주풍경을 그렸다. 서귀포에서 ‘제주생활의 중도’라는 작품명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그는 줄곧 ‘서귀포 왈종’이라는 사인을 사용해 왔다.

1997년경, 정방폭포 근처에 작업실을 옮겨 마음가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 2013년에는 정방폭포 작업실을 개조해 왈종미술관을 건립했다. 개인 화가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작가미술관 건립은 무엇보다도 운영면에서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 그의 왈종미술관 건립은 그야말로 통 큰 결정이었다. 

개인화가 미술관은 해당 화가의 화업을 읽는 곳이자 그의 삶을 이해하는 곳이다. 이왈종이 삶의 과정에서 마주치는 모든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에너지를 화폭에 담아놓은 주제가 바로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였다. 

왈종미술관은 개관 10주년 특별 기획으로 2000년대 초반 서귀포신문에 연재했던 이왈종의 삽화 40여 점 중 36점으로 삽화 원화전을 마련했다. 서귀포신문 게재 이후 최초로 공개하는 이 삽화들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든 서귀포 왈종의 제주생활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삽화란 어떤 서사적 스토리를 시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림이다. 그렇지만 문필가의 해석과는 다르게 한 화가의 함축적인 재해석이 그림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삽화들을 자세히 들여야 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에 머물렀던 진득한 감정들이 쏠쏠 우러나온다. 사라져가는 풍속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른거리는 우리들의 기억을 되살린다. 

삽화에 등장하는 제주의 일상은 사사로운 집안 풍경과 아기구덕, 정겨운 등물하기, 가족의 일원이었던 마당의 개 가족, 마을 축제였던 운동회의 이모저모, 신구간 이사, 맷돌 작업 등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적 구도, 다양한 컬러, 특유의 표현력이 경쾌함을 더해준다. 

우리는 작은 삽화 한 장에 어린 오래된 연륜에서 예술은 범상치 않음을 배운다. 한 줄의 선, 하나의 면, 한 가지 색이 모여 한 작품의 하모니를 이루 듯 인간은 자신의 생애와 자연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자신만의 형상을 만들어간다. 누구나 인생에서 다하지 못한 노래가 있듯 노화가의 예술 작업은 지금도 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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