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랭이와 전쟁을 벌이는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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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뽑아도 뽑아도 뒤돌아보면 보이는 게 잡초”란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밭농사 경험담이다. 쪼그리고 앉아 하는 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허리와 무릎이 남아나질 않았다. 풀꽃피고 풀씨가 맺히지 않게 싹이 나오자마자 뿌리채 뽑아야 했으니, 손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잡풀이 왕성해진다.

이글거리는 한 여름 햇빛으로 땀은 등줄기를 타면서 갈옷이 흠뻑 젖는다. 보리 수확에 이어 조농사가 시작된다. 조가 싹이 트기 시작하면 잡초도 경쟁하듯 함께 하늘을 향해 활개치며 쑥쑥 자라난다. 이제부터 인내심 테스트가 시작된다. 초벌 검질 매고 나서 며칠 지나면 두벌 매고, 조가 성인 무릎쯤 자랄 때까지 네 차례나 허리 굽혀 펴기 작업은 계속된다.

텃밭에 초여름 비가 땅을 흠뻑적셨다. 얼마 전 파종한 참깨 씨앗이 발아돼 떡잎이 나왔다.

떡잎 사이사이로 먼저 돋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잡초, 바로 바랭이(재완지)다. 벌써부터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다. 저들과의 전쟁 아닌 전쟁을 벌여야만 한다니. 걱정스럽고, 속상하다. 그렇다고 미리부터 포기할 수 없지 않는가. 바랭이는 바짓가랭이와 같아서 바랭이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몸둥이가 잘려나가도 끈길기게 되살아나 기고 또 기면서 옆으로 옆으로만 뻩어나가는 풀이다. 꽃 피고 씨가 맺히면 큰일이야, 큰 일, 안돼요, 안돼요. 뿌리가 깊기 전에 자꾸 자꾸 뽑아내야지. 혼자 중얼거리며 손목과 손가락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찮은 잡초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닥친다” 라는 명언을 남기신 할머니의 밭벼 김매기 추억담이 소환한다. 밭벼밭에 바랭이가 매섭게 터줏대감처럼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뻗히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란다. 호미를 손에 단단히 잡고서 뽑으려면 쉽게 뽑히지 않아 잘못하다가 몸의 균형을 잃어 뒤로 벌렁 넘어지는 취객 신세가 된다. 물고 물어 늘어지는 저 끈질긴 생명력, 그 의지는 내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에서 자리하고 있는 탐욕처럼 말이다. 독식이란 탐욕은 공정성과 평등성을 해쳐서 마침내 불행을 초래할지 모르는 일이다. 저처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혼자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일, 결코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에서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참깨를 살리기 위해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바랭이의 생명력 앞에 손마디 마디에 쇠못이 박힌다.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을 얻기 위해서 땀을 열 방울 흘리는 공을 들여야 하느니.

거동할 수 있을 때까지 밭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 해온 터라 이들을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축출하는 방법이 숙제로 남고 있다. 풀밭에서 풀처럼 살다가 언젠가 다시 풀 밭 속으로 돌아가게 되는 인생.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인생의 내리막 길에서 우선 해야 할 것은 탐욕을 내려놓고 나누고 베푸는 일이다.

한 방울의 참기름이라도 이웃과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하늘이 수확에 도움을 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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