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 도심에 쉼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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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얼마 만인가. 부부가 카푸치노 한 잔씩 받아 앉아 시간을 보냈다. 나는 퍽 하면 글 쓴답시고 입 닫고 지내기 일쑤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아내의 얼굴이 가을 하늘처럼 청명해 눈만 맞추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길에 나와 산책하다 기분이 처졌다. 연동과 노형동 접경, 번화가에서 조금 벗어난 곳. 곧게 뻗은 길을 걷는데 허리에 압박감이 오고 다리가 뻐근하다. 살펴도 앉을 만한 마땅한 데가 없다. ‘벤치가 있었으면…. 어디 쉼팡 같은 것도 없나.’ 잠시 앉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쉴 만한 구조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돌 몇 덩이 깎아 놓으면 될 걸.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도시 디자인이다. 시내버스 정류장은 다리가 휘청거릴 즈음에야 보였다. 힘겨웠다. 모처럼의 나들이가 엉망이 돼 버렸다.」

2020년 11월 20일자 「제주일보」 ‘안경 너머 세상’에 실렸던 글이다.

한데 그새 거리가 확 달라졌다. 연동 진입로에서 제주우편집중국에 이르는 거리에 쉼팡이 놓였다. 돌을 깎아 양옆으로 기둥을 세우고 원목 널빤지를 얹은 깔끔한 의자들. 긴 거리라 적지 않은 숫자다. 가로수를 가운데 하고 마주 앉게 두 개씩 앉혀 놓았다. 사이엔 꽃나무들을 촘촘히 심었다. 어우러진 나무와 쉼팡과 꽃나무의 조합이 전에 보지 못 하던 색다른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단지 풍경이 아니다.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로 들끓는 거리는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쉼팡 군데군데 사람이 앉아 있는 분위기는 보기만 해도 살갑다. 이전에 없던 모습 아닌가. 길 가던 친구 몇몇이 잠시 다리를 쉬며 담소를 나누는 자리, 나무 그늘과 꽃이 있어 사람을 품는다. 행정의 자상하고 따듯한 손길이 느껴진다. 막연한 관념이 아닌,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앉는, 이게 바로 복지 행정이 아닐까.

이따금 우편집중국에 다녀올 일이 생긴다. 채 부치지 못한 작품집을 우송하기 위해서다. 엊그제 다녀오며 연동 거리가 달라졌음을 몸으로 느꼈다. 그냥 달라진 게 아닌 그저 그렇던 오랜 허물을 벗어던진 탈바꿈이었다. 나는 몸이 성치 않아 비틀거리는 다리로 오래 또 멀리 걷지 못한다. 5분이 길 때도 있다. 곁에 있는 아내에게 부탁해 안될 건 아니나, 내 책 내 작품이 실려 있는 책은 하는 데까진 손수 해 오는 버릇이있다. 고집스러운 것 같지만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며 몸에 밴 것이라 이 부분 나를 그냥 방임해 온다.

실은 형편이 구차해졌다. 오른손에 지팡이를 짚고 왼손은 아내의 손을 잡고 나선다. 내 작품이 실렸다고 보내온 책이 여려 권일 때는 아내가 그걸 작은 등 가방에 넣어 지기도 한다, 우리로선 쉽지 않은 운신이다. 걸음걸음 떼어놓다 눈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 가로수 아래 말끔히 놓여 있는 쉼팡. 1분쯤, 거기 다리 뻗고 앉는 시간이 흐뭇하다. 쉼 가운데도 길 가는 도중의 이런 쉼같이 고마운 배려는 없으리라. 더욱이 도시 한복판 번화한 거리가 아닌가.

이젠 깔축없이 됐다. 길 가다 지친 사람들이 쉬어가게 가지런히 쉼팡이 놓여 있는 거리. 쉼팡이 있어 사람을 품는, 연동은 아름다운 휴머니즘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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