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간 ‘푸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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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시조시인

정정되지 않고 후대로 전달되는 오류는 잘못된 사실이 끊임없이 옮겨지는 문제를 만든다. 시대적 혼란기의 기록이라 할지라도 오류를 제대로 알리는 건 당연하다. 여행 후 의식의 갈피에서 유빙처럼 떠도는 ‘푸른 편지’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모든 장르를 넘나들며 천부적 재능을 발휘했던 디아스포라 작가, 고려인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 조명희를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도인 타슈켄트 시내, <나보이 문학박물관> 4층 한쪽에 <조명희 기념실>있다. 입구 문에는 현판이라고 하기엔 초라했지만, 견고딕체 닮은<조명희 기념실> 글자체가 작가의 마음인 듯 느껴졌다. 작가의 흉상 위쪽 벽면엔 그의 소설「낙동강」의 일부가 쓰여 있다. 잃어버린 조국을 그리며, 고뇌하는 지식인의 마음이 물씬 느껴진다. 누렇게 뜬 지면에 해독할 수 없는 러시아어 기사가 시대를 관통했던 작가의 삶을 짐작케 한다.

여행에서 돌아와 조명희에 관한 책을 주문하면서 다시 사진들을 펼쳐보았다. 여러 편의 동시가 실려 있는 사진 속에서 무척 익숙한 작품을 발견했다. 「푸른 편지」였다. 내용을 보니 분명 초등학교 2~3학년 때 배웠던 동요 가사가 아닌가. 벅찬 감동에 더 알아보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몇 번 해보니 「푸른 편지」는 바로 우리가 부르던 동요 「봄 편지」였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더군다나 「봄 편지」는 울산이 낳은 서덕출 동요 작가의 대표적 작품인데 더 충격이었다.

엄청난 비밀을 알아낸 듯 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여행을 주관했던 최 작가님께 연락

했다. 알아본 결과 진천의 <조명희 문학관>에서도 이 내용을 알고 있었고, 모 대학의 교수님은 이미 오류임을 알고 30여 년 전 바로잡는 글을 유명 문학지에 게재하기까지 했다는데... 그대로 방치된 이유가 궁금했다. 어디에서 잘못된 걸까. 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믿고 또 그대로 인용할 수도 있는 일인데, 잘못됨을 알면서도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는가. 최 작가님은 현지방문과 국내에 오류사실을 알리며 방법을 찾으려 동분서주했다. 그런데 책임의 소재가 없다. 타슈켄트의 기념실이나 국내 진천의 문학관이나 현시점에서 책임의 소지가 없다 한다. 책임소재의 단절의 의미로. 지금까지 긴 시간 방치된 이유이기도 했다.

<조명희 기념실>이 존재하는 한 오류 또한 여전히 전해질 거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실수였던, 오류로 유기된 채 더 흘러가야 하나... 이 또한 시대를 잘 못 탄 비운인지 마음이 착잡하다. 작가 조명희는 신비주의도 전설도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 속에 있다. 무관심으로부터 제대로 복귀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녕 책임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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