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야 바다에서 해방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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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바람의 섬, 우도를 가다 下

마음 다독이는 연주·시 낭송 이어져…‘시의 오찬’ 인상
해녀, 서슬 퍼런 두 눈 속 아마존 여전사의 강인함 읽혀
비바람 무릅쓰고 강행한 바람난장은 깊은 각성으로 남는다. 홍진숙 作, 그리운 섬, 우도.
팬플루트를 연주하는 서란영 연주자.

서란영 님이 우도에 고래를 초대했다. 팬플루트로 고래사냥을 연주한다. 리듬에 맞춰 관객들이 콧노래를 시작한다. 이어지는 곡은 한술 더 뜬다. 바다에 나가 목숨과 바꿔가며 캐온 전복이 서방님 술값이라는 내용인데, 여기저기서 큰 웃음보가 터졌다. 연주자의 노림수 아닐까 싶다. 이때 아니면 언제 밑천 없이 한바탕 웃어 보겠는가.

이어서 장순자 님이 시 낭송을 준비한다. ‘우도 땅콩이다. ‘반쯤은 바다에 빠져 절반만 여문 거라는 콩알만한 우도 땅콩이 제 이름값은 족히 한단다. 수박이나 참외도 작은 것이 잘 팔린다는데 콩 방울만 한 땅콩 또한 남다른 쓰임이 있지 않을까.

색소폰을 연주하는 강용희 서귀포생활음악협회 지부장.

첫눈에도 값비싸 보이는 색소폰을 든 남자, 강용희 서귀포생활음악협회지부장님이 성큼 무대로 나선다. 색소폰을 테스트하는 동작부터 연주하는 자세까지 지긋하니 무게가 있다. 두 다리로 무대 바닥을 버티며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Stranger On The Shore’‘This Masquerade’의 웅장한 색소폰 연주가 끝나자 박수가 이어진다.

노래를 들려주는 이성진 솔동산 음악협회 회장.

이성진 솔동산 음악협회회장님은 촛불 위에 흐르는 연가’, ‘사랑의 강을 부르며 해녀인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을 쏟아낸다. 어릴 적 바다에서 하모니카를 들려주었다던 어머니, 무에 그리 바쁘셨는지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사랑뿐만 아니라 어리광도 묻어난다. 뒷동산에서 어머니와 손잡고 걸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이 겹친다.

 

김정희 바람난장 대표님이 마이크를 접수하더니, 우도 시인이자 자치회장님이신 김철수 님의 서빈백사를 낭송한다.

 

쌓인 백모래 위에

햇빛이 눈부시고

바다에는 에메랄드색

 

모래 주변 돌 사이 피어 있는 해국

엄마와 아이가 손을 마주잡고

야생화 꽃향기에 취하는구나

 

용솟음치는 물결

지나는 돌고래들

 

홍조단괴(서빈백사) 쌓인 해변

태양에 정을 두어

떠나려고 하였건만

발이 움직이지 않아

 

그대들은 돌아가고

나 홀로 남아 있다

 

김철수 님의 목소리로 낭송을 청할까 망설이다가 차마 청해 듣지는 못했다. 다들 아쉬움 가득한 표정이다. 민첩한 사회자가 눈치챘는지 앞자리의 강영수 시인을 무대 앞으로 모신다. 우도를 지키는 어른으로서, 우도의 삶을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할 말이 왜 없겠는가. 노시인의 한마디가 활이 되어 관성을 겨눈다. ‘언어로 사람 마음을 훔치는 게, 시인이라는 말이 빈말 아니라는 것을 시인의 말을 듣고서야 깨닫는다.

느낌으로 시를 쓰고, 감성으로 낭송한다. 내가 읽을 때는 알지 못했는데, 대체 얼마 만인가. 나를 울게 한 나의 시, 낭송 덕분에 시가 내게로 다시 왔다. 시는 역시 낭송이 제맛이다.”라고 소회를 전한다. 시인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마음을 열고 들어온 시, 그 시의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바람난장의 마지막 순서 관객시 낭송시간이다. 우도에 대한 시를 수십 편 써낸 이생진 시인의 무명도를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돌아가면서 낭송한다. 낯선 사람과 함께 맛보는 시의 오찬이다.

시가 맨 마지막 관객에게 이르렀을 때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라는 문장을 능청스레 저 육지에서 한 달만 살자로 바꿔 낭송했다. 족히 육칠십은 넘겼을 그녀의 바람은 제주섬에서, 육지에서 한 달만 살아보는 것이었다. 눈 뜨면 보이는 건 바다뿐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눈을 감아야 비로소 바다에서 해방되는 삶 아니던가.

그녀의 바람이 강렬히 내게 닿았나. 우도의 바람[所望, ]을 감히 입에 올릴 수조차 없었다. 생각이 머물러 정체된 지점을 알아차리는 뜻깊은 순간이었다.

행사가 마무리된 후, 잠시 짬을 내 김양순 잠수회장님을 인터뷰했다. 해녀 활동에 대해 궁금한 것을 여쭈니 시원시원하게 답해주신다. 깊게 서슬 퍼런 두 눈 속에서 아마존 여전사의 강인함이 읽힌다. 깊은 바다에서 날숨 참아가며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슬픔을 토해내 본 적 없지는 않을 것이다. 섬이든 육지든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럴 테니 말이다.

돌아오는 길, 낼모레 육십인 사람이 아직도 이렇게 커가는 중이라며 겸손해진다. 비바람을 무릅쓰고 우도에서 강행한 바람난장은 깊은 각성으로 남는다.

다음 바람난장은 722일 저녁 7시 함덕해수욕장에서 함덕문학회와 함께하는 바람난장이 펼쳐집니다.

 

글=오민숙 세화중학교 교감·수필가

 

사회 김정희 시낭송 이정아·장순자·김정희 무용 박연술제주연무용단 연주 서란영·강용희

노래 이성진 사진 허영숙 음향감독 장병일 총감독 김정희 그림 홍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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