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속에 들어 있는 권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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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혜경, 제주연구원 책임연구원/ 논설위원

요즘 시대 “나 때는 말이야” 하고 누군가 말을 한다면, 냉소적인 비웃음을 받는다. 그 말 속에는 상대방을 비하하고 자기가 우월하거나 권위가 있음을 드러내는 계층의식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종종 젊은 세대들은 그런 권위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라떼’ 음료를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돌려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시대 및 사회변화에 따라 권위를 획득하는 방식도 변해왔고, 변해야 한다. 근대 모던 사회에서 권위는 규칙과 규율, 통제 등을 통해 획득하는 것이었다면, 탈근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권위는 근대 이성이 가지고 있는 규칙, 규율, 검열, 통제를 해체하는 것이다. 이는 합리성의 반성에 기반 한다. “모든 인간은 합리적이며, 합리성은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모더니즘 사상이 저지른 세계대전과 냉전 등 비인간적 모습들을 목격하면서이다.

여기서 말하는 해체는 무조건 지리멸렬한 카오스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주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과 비주류적인 요소의 재조명이다. 그런 점에서 권위에 대한 해체는 잘못된 복종과 권위에 대항하고, 통념을 해체하는 것이다. 권위의 해체는 잘못된 기존 가치들을 허물고, 모든 현상적인 것들의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것은 인간에게 체화되어 있는 잘못된 권위에 대한 의식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며, 권위를 이용하여 타인을 겁박하는 것이 권위의 본 모습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를 우리는 권위주의라고 말하는데, 권위주의를 강조하는 사람은 타인의 변화만을 강요한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권위』라는 책자에는 ‘영성을 잃어버린 채 권위의식만 가지고 사역을 지탱하려다보니 잘못된 왜곡이 나왔다’라는 글이 있다. ‘권위는 자신을 낮추며 겸손한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도 했다. 자신을 높이고 늘 상석에 앉으려는 사람들은 권위가 아닌 권위의식이 투철한 사람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권위적인 사람과 소통하는 문제로 고민을 한다. 시대와 사회는 변화하는데, 일방적인 소통만을 주장하여 상대로 하여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이런 상황은 사회적 관계 형성이나 조직문화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온다.

‘권위 있는(authoritative) 사람’과 ‘권위적인(authoritarian) 사람’은 다른 것이다. 권위적인 사람은 자신의 사회적 체면과 지위, 명예에 집착하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면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특징이 있다. ‘감히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라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상대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화 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 고립시키고 매장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라떼는 말이야’ 무용담은 권위적인 사람의 의식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의 일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다른 사람과 협업이 어렵고 시너지를 내기가 어렵다.

권위는 본인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세워주는 것인데도 체화된 의식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권위는 높은 도덕성과 훌륭한 성품,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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