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配達)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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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국, 제주테크노파크 용암해수센터장/ 논설위원

한말(韓末)에 고종을 도와 대한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의 견문기 ‘The passing of korea’에 보면 한국인의 특이한 쇼핑 생리에 대해 언급해 놓고 있다.

한 대목을 살펴보면, “조선 사람이 물건을 사려면, 몸종으로 하여금 단골 점포에 알린다. 그러면 점포 주인이 그 물건을 들고 와서 주거나 고르게 한다. 그러기에 점포에는 물건들이 전시돼 있지 않고 곳간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정상이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 유통구조는 수요자가 상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인이 수요자를 찾아가게끔 돼 있었다. 등짐 봇짐장수가 소금이며 새우젓이며 메밀묵이며 온갖 것들을 지고 이고 메고 이 마을 저 마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필요로 하는 물건을 대주었다.

따라서 단골 관계가 형성되고 배달 시스템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배달된 것은 비단 생활필수품만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의원도 환자를 찾아 왕진하였으니, 의료 서비스도 배달하였고, 무당도 단골을 정해, 집집마다 방문하여 굿판을 벌였으니, 주술 서비스(?)도 배달하였으며, 판소리의 원조인 입담꾼들도 동네방네 초대되어 원맨쇼를 펼치며 떠돌아다녔으니, 엔터테인먼트도 배달되었던 것이 우리네 전통사회였다.

이 배달 문화의 뿌리 깊은 전통 때문인지, 기술의 발달 때문인지, 요즘에는 방안에서 핸드폰 하나만으로 의식주 생활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배달 플랫폼의 발전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어 가는 양상이다. 자동차 렌트도 기사 없이 원격조정으로 수요자의 집 앞으로 배달되는 서비스가 개발되었다 한다. 향후 배달 플랫폼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대목이다.

근현대에도 쌀이나 연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자장면, 신문, 커피까지도 배달이 되었었다. 전통적인 배달 시스템이 품목 확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현재의 배달 플랫폼과 다른 점은 당시는 별도의 배달 요금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달에 별도의 요금을 부과한다는 생각도, 기꺼이 배달료를 지불할 의사도 없었던 것이다. 배달은 일종의 서비스 개념이었고, 판매 채널 다각화의 일환으로 보았던 것이다. 우리네 전통적인 배달 시스템과는 배달 요금을 받는냐 받지 않느냐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배달 플랫폼을 이용하는 이유는 편리성(접근성)과 경제성에 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배달 인력을 직고용하여 운영하기에는 인건비 상승으로 비용도 많이 들고, 인력 구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들어간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문화가 바뀌어 가면서, 소비 패턴도 다양하고, 주문과 결제가 일거에 해결되는 편리성 등 나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공급자나 소비자는 기꺼이 배달 플랫폼에 대한 지불의사를 갖기에 이르렀다.

요즘 배달 플랫폼이 보편화됨에 따라, 플랫폼에 지불하는 비용은 적절한가, 서비스의 품질은 만족할 만한가, 문제가 발생할 때 책임 소재는 명확한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 문제와 고려사항이 발생되게 되었다.

소비는 재화나 서비스를 필요에 의해 구매할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소비의 중심이 배달로 이전되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따져 볼 때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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