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깊어질 때 만난 송백 같은 마음
외로움이 깊어질 때 만난 송백 같은 마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11)손해를 보면서도 지킬 수 있는 의리 下

추사적거지 마당에 바람난장 한창…관객 시선에 호기심 가득
과연 생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일까…애절한 악기 소리가 물어와
추사적거지 좁은 마당에서 바람난장이 한창이다. 안거리, 밖거리, 모커리 나지막한 초가지붕 아래 난간(툇마루)에는 관객들이 올망졸망 앉고 서고 자리를 잡았다. 유창훈 作, 세한도와 난장사람들.

추사적거지 좁은 마당에서 바람난장이 한창이다. 마당 한쪽 눌(가리)을 배경으로 무대가 섰다. 안거리, 밖거리, 모커리 나지막한 초가지붕 아래 난간(툇마루)에는 관객들이 올망졸망 앉고 서고 자리를 잡았다. 무대로 모아지는 외국인 가족들 시선엔 호기심이 가득하다.

외국인들은 서귀포문화재야행 행사에 참여한 9개국 주한 외국대사와 외교관 가족이라고 한다. 사단법인 제주마을문화진흥원(이사장 안정업)이 주최하고, 문화재청과 제주특별자치도가 후원하는 고택 종갓집 활용사업으로 추사가 만난 제주를 관람하던 중이다.

김정희 바람난장 대표가 정수자 시인의 장무상망을 낭송한다.

 

외롭고 외로울 제 바다는 더 저승 같고

수선화 목을 빼도 봄소식 감감할 제

꽃인 양 서책을 들고 달려오던 그대여

 

그립고 그리울 제 집은 한 채 무덤 같고

먹을 나눈 벗조차 황차 무심할 제

생을 건 먼 바닷길에

비단을 펴던 그대여

 

세한의 매운 그늘 뼛속까지 시려올 제

문자향 문득 피운 송백을 우쭐 세운

더없이 깊은 그대여 푸르도록 기루겠네

 

-정수자 시인의 장무상망(長毋相忘)’전문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주며 추사는 두 개의 인장을 찍었다고 한다. 하나는 완당(阮堂)’ 선생의 호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장무상망(長毋相忘)’.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뜻이다. ‘그립고 그리울 제 집은 한 채 무덤 같고/먹을 나눈 벗조차 황차 무심할 제/생을 건 먼 바닷길에/비단을 펴던 그대여모두가 멀어져서 외로움이 바다처럼 깊어질 때, 위험을 무릅쓰고 험한 바다를 건너 찾아 주었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송백 같은 그 마음에 얼마나 고마웠을까.

이때 추사 선생이 깜짝 등장한다. 실은, 추사로 분장한 강상훈 님이다. 현희순님의 내레이션이 중요하다. “그는 왜 여기로 유배를 오게 된 것일까? 1840년 그의 나이 55세 그의 증조부는 영조의 사위였다. (중략) 윤상도의 상소문을 추사가 초안했다는 안동 김씨 측의 허위 진술로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다행히 조인영의 도움으로 목숨만은 건진 채 제주도로 유배를 오게 된 것이다.”

추사의 독백이 이어진다. “언제쯤이면 나의 무고가 밝혀 질는지” “살아서 뭍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퇴장하는 추사의 뒷모습에 반드시 뭍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비장한 의지가 서려 있다.

서경애의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

서경애 님의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가 이어진다. ‘천년바위. 과연 생은 무엇이고 삶은 무엇일까. 부질없는 욕심으로 인간사에 얽히고 치이며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소프라노 색소폰의 애절한 소리가 그렇게 물어오는 듯하다.

이마리아와 김익수의 ‘오솔레미오’.
이마리아와 김익수의 ‘오솔레미오’.

이마리아 님과 김익수 님의 목소리로 오솔레미오가 나지막한 초가지붕을 넘어 퍼져 나간다.

오 찬란한 태양 너 참 아름답구나! 그러나 그 태양 말고 더 아름다운 태양 있으니 나의 태양이여추사 김정희 선생에게 무엇보다 아름다운 태양은 송백같이 언제나 푸른 이상적의 의리가 아니었을까. 꽃보다 더 고운 꽃이며, 태양보다 더 빛나는 태양이었으리라.

이춘애의 에어로폰 연주.

이춘애 님의 에어로폰 연주로 꽃밭에서가 울려 퍼진다. 모두가 아름다운 꽃송이가 되고 마당은 고운 빛 가득한 꽃밭이 된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으로 가득한 6월의 한낮, 어디선가 꽃향기가 살며시 날아든다. 뭍에서 추사 선생에게 좋은 기별이 있으려나 보다.

전병규 님의 소금 연주가 현희순 님의 반주로 시작된다. ‘청성곡이다. 소금의 맑은소리가 높게 올라갔다가 길게 뽑아내며 가늘어졌다가 굵어지고 또다시 가늘어진다. 국악기의 가락이 신비스런 소리를 내며 울려 퍼질 때, 추사 선생으로 분장한 강상훈 님과 박연술 님이 마당으로 들어서며 퍼포먼스를 펼친다. 추사 선생께서 바다를 건너고 고갯길을 오르고 내려 한양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기별이 오나 보다. 청성곡에 맞추어 태평성대를 누린다면 오죽 좋을까마는 또 하나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음이 애석하다.

추사 선생의 유배지에서 선생의 고독한 유배 생활과 손해를 보면서도 지킬 수 있는 의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좌여순 작가

▲사회=이정아 ▲무용=박연술 ▲음악=서란영, 서경애, 이춘애,  전병규, 현희순 ▲노래=이마리아, 김익수 ▲그림=유창훈 ▲퍼포먼스=강상훈 ▲해설사=고정매 ▲사진=허영숙 ▲음향감독=장병일 ▲시낭송=이정아, 장순자, 김정희 ▲총감독=김정희
 
 

※다음 바람난장은 7월 8일 우도에서 펼쳐집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