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를 축하하는 사회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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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옥, 제주장수복지연구원장/ 논설위원

백 세 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보니,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장마가 시작되고 무더위가 예감되는 요즘은, 좋지 않은 소식에 더욱 민감해진다. 예고 없이 날아드는 부고장은 신속하게 캘린더로 옮긴다. 죽음은 짝을 찾아 떠나는 법이기에 흔적을 남겨서는 안된다.

이러한 때에 제주도로부터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올해 100세를 맞는 노인 약 250명을 포함해 ‘100세 이상 396명에게, 각 100만원씩 총 3억9600만원을 지급할 예정’이란다. ‘게무로사 이 백세 늙은이를 제게 죽어불랜 안 해영, 이추룩 웃점신고 이?’라는 어머니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사실 제주도가 백세축하금뿐 아니라 85세 이상 노인에게 장수수당을 지급하는 일은, 매우 제주도다운 정책이다. 지난 주 탐라문화유산보존회가 개최한 학술대회에 의하면 ‘제주에 장수노인들이 많다’는 사실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요, 지속해 나가야 할 문화유산이다. 1651년부터 3년간 제주목사로 재임했던 이원진은 ‘탐라지’를 통해, ‘인다수고(人多壽考)’라는 제주풍속을 소개하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질병이 적고 젊은 나이에 죽는 사람이 없으며 나이 80~90에 이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증(1680년)은 제주목 관덕정에서 양로연을 베풀며, ‘제주의 인구는 겨우 2만명인데, 80살 이상이 2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많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형상(1702년) 또한 제주목 망경루 마당의 경로연에서 ‘100세 이상 노인 3인, 90세 이상 노인 23인, 80세 이상 노인 183인이 참석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제주도의 장수축하제도는 수백년 전통으로, 오늘날 다시 꽃을 피우는 장수문화의 뿌리임을 알 수 있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가 되면서부터 제주장수문화연구센터를 설치해 제주노인의 삶의 질 향상을 정책화하고 있다. 2023년 4월 기준, 제주도의 85세 이상 초고령노인의 비율은 12.69%로, 장수도(長壽度)가 전국에서 4번째다. 100세 이상 인구는 전국 8560명 대비 295명으로, 단연 1위다. 제주 인구 10만명 당 백세 노인 43명이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전남 33, 전북 28, 강원 24, 충남 23 등이 뒤따르고 있다. 참고로 제주도의 백세 이상 인구 분포는 남자 16명, 여자 279명으로, 설문대할망의 후광을 입은 할머니들이 ‘여다의 섬’을 가열차게 이어가는 중이다.

다만, 조심스럽게 살펴보기는, 제주도 할머니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백세를 살아가는가’ 하는 점이다. 죽어도 집에서 살고 싶은데, 과연 재가복지시스템이 그러한 욕구를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는지도 문제다. 관련연구에 의하면 자택에서 장기요양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만성질환·치매·장애 등 건강문제, 외로움을 비롯한 삶의 의욕상실·좌절감·우울 등 심리적 문제, 식사·청소 등 가사 활동의 애로 등이다.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서 한라산으로 서복을 파견했다’는 이야기가, 정방폭포에 ‘서불과지(徐市過之)’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한라산에 불로초가 자라고, 하늘을 나는 신선들이 살았다’는 전설을 생각하며, 한라산을 바라본다. 설문대 할망이 누워 계신 형상이다. 산기슭에 내가 살고, 섬 전체가 산이 된다. 그 품속에 사는 우리 안에 장수의 DNA가 자라나 보다. 내년에는 관덕정에서 베풀던 양로연을 제주국제컨벤션센터 탐라홀에서 열어보면 어떨까. 백세의 명약은 효심이 제일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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