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메 밭담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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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 시조시인

제주시 문예회관 동쪽 시내버스 정류장 유리창엔 단시조 한 편이 쓰여 있다. ‘바람이/ 쓸고 간/ 시외버스 정류장/ 시간이 남겨둔/ 노인이 있습니다/ 지그시/ 의자를 누른/ 삶의 무게 보입니다’ 송두영 시인의 「정거장에서」란 작품이다. 송 시인은 물메(수산리)에 산다. 시조도 쓰면서, 마을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말엔 제주시조시인협회 ‘시인의 날’ 주인공이 된 그를 만나러 회원들과 물메로 갔다.

그는 ‘수산리 설촌은 고려 원종 12년(1271년) 삼별초 김통정 장군이 제주에 들어와서 귀일촌에 살면서 항파두리성을 축조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명칭은 정상에 못이 있는 '물메오름(수산봉)'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물이 맑고 산이 아름답다고 하여 물메라고 불리어 오다가 수산으로 변경되었다. 현재 예원동, 본동, 당동, 하동 등 4개의 자연마을로, 520여 가구에 1,4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물메 밭담길은 2016년 FAO(세계식량농업기구) 세계중요농업유산 제주 밭담을 활용한 농촌 마을 6차 산업화사업으로 제주 밭담과 농촌의 문화, 환경을 체험하고 지역 홍보와 활성화를 위한 사업으로 선정 조성되었다. 그리고 유명한 수산저수지가 있고 곰솔(천연기념물 441호)과 수산봉 정상에 설치되었던 봉수대와 기우 제단 등 유물 유적이 많은 유서 깊은 마을’이라고 소개했다.

물메. 말만 들어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평화와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중산간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산과 물을 배경으로 아늑한 농촌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복지회관을 출발하여 4·3 때 성을 쌓아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했던 길목으로 갔다. 벼랑엔 인공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길 따라 동산 위로 오르니 백세로라 한다. 이 길을 걸으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게 한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머리가 저절로 맑아진다. 길가 밭담 곳곳엔 시를 적은 돌이 있다. 잠시 멈춰 시를 읽으며 또 다른 상상의 날개를 그려 본다. 천천히 걷는데도 어느덧 저수지 앞에 도착했다. 쌀이 귀한 시절 1957년 원벵듸에 논을 만들어 물을 대기 위해 하동마을 72가구 중 42가구와 농토가 수몰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곳이다. 제방 길을 걷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공사 중이다. 2년 후 다시 물이 채워질 것이라 한다.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지나자 짙푸른 초당 옥수수밭이다. 눈이 저절로 환해진다. 밭길을 지나 마을 수호목 곰솔 앞에 섰다. 바로 앞 수산봉 둔덕 큰 소나무엔 하늘그네가 떠 있다.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1시간 넘게 걸었지만 조금도 버겁지 않다.

왜일까. 싱그러운 신록, 들꽃과 시를 읽으며 걷는 밭담 길에서 즐거움과 생태 감수성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리라. 때때로 중산간 마을도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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