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대중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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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진 동화작가

“저 제가 등 때 좀 밀어드릴까요?”

코로나 팬데믹이 풀리기 시작한 지난 3월 어느 날 오후로 기억된다. 힘들게 등과 사투(?)를 벌이는 내가 안타까워서였을까? 초로에 접어든 신사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요즘도 섣불리 남 등 때를 밀어주겠다고 제안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외였다. 하지만 난 그분의 진심 어린 눈빛을 보곤 얼른 감사함을 표하며 등을 내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오랜만에 대중목욕탕을 찾았었다. 평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목욕을 했었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몇 년 간은 거의 대중탕을 찾지 않았다. 집에서 샤워로 목욕을 대신해야 하는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중탕을 찾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버린 탓일까? 아무리 샤워를 해도 개운하지가 않다.

어쩌랴! 등 때문에 대중탕을 찾을 때마다 늘 안타까웠었는데 그날은 구세주를 만난 격이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젠 제가 밀어드릴게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사양하고 제자리로 돌아간다. 정말 시원하고 상쾌했다. 어렵게 밀어야 하는 지점에서 늘 좌절하고 끙끙대기 일쑤였는데 이렇게 고마운 분 도움을 받다니 거듭 사의를 표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분은 목욕탕을 빠져나가 보이지 않았다.

인간도 침팬지나 고릴라와 같은 영장류이긴 하지만 팔이 짧아 욕탕에서는 늘 어려움을 겪는다. 아니 나만 유독 팔이 짧은 것일까? 욕탕에서 닿을 듯 말 듯 애간장을 태우는 지점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좌절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하는 말이다.

인터넷 검색창에서 등 때라고 쳐보라. 키워드 등 때만 쳐도 혼자 등 때미는 방법 등이 좌악 검색되어 나온다. 한 수 더 떠 쇼핑하우에선 등 때 미는 각종 도구들을 알고리즘이 찾아주면서 화려하게 화면을 장식한다. 얼마나 등 때 밀기가 답답했으면 사람들 지갑을 노리는 검색어가 줄줄이 나오겠는가 말이다.

작은 친절과 배려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오늘 밤 난 그 초로의 신사에게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날 살려낸(?) 그 구세주처럼 내가 누구에게 친절과 배려로 살가운 도움을 줬던 기억이나 있는가? 기억을 되살리려 하면 할수록 부끄러움만 묻어 나올 뿐이다.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진다. 함부로 옆 사람에게 등 때를 밀어달라고 부탁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스스럼없이 서로 등을 내주며 정담을 나누는 목욕 문화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일까?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서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나비효과처럼 남을 배려하는 손길들을 모아 모아 온 나라에 번져나갈 수 있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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