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런 일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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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 / 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해녀 손끝이 불러온 제주의 봄바당!

아름다운 경치는 한마당 축제가 열리면서 야단법석이다. 예부터 보던 것이지요. 한 겨울을 이겨내고 깊고 얕은 바당엔 해조류가 숲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백미는 미역이었다. 어랑 어랑 하면서도 반들 반들거리며, 미끄러운 듯이 나풀거리는 것이 해녀의 시선을 강타한다.

바다 상황을 미리 점검 하고 뭍으로 나온 한 상군 해녀 어머니는 먼 마을로 시집보낸 큰 딸에게 기별을 보냈다.

해마다 음력 3월 중순이면 도내 어촌에서는 겨울 내내 미역채취를 막았다가 미역이 다 자랐다고 판단이 서면, 마을마다 일정한 날을 정해 채취를 금했던 것을 해제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미역해경’이라 불렀다.

해경날에는 해녀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이나 친지들까지 일손을 돕기 위해서 바닷가로 달려 나온다.

일찌감치 바다에 뛰어든 상군 해녀가 큰 망사리를 가득 채우고 먼저 나오기 시작한다. 망사리에서 물이 빠지면서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불덕 앞으로 다가온다. 물먹은 미역을 나르다가 잘못하면 바위 위에 낀 이끼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고, 작업을 서두르지 않는다고 꾸짖는 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바닷가는 긴장과 웃음으로 활기가 넘친다.

불턱의 불길은 해녀들의 살과 살들이 햇살에 탄 것처럼 붉게 물들이고 나서야 추위를 다 녹인 듯 다시 두 번째 바다로 들어선다.

장난 끼가 넘치는 아이들은 대나무에 미역귀를 꿰고 해녀들의 다리와 다리 사이로 집어넣어 굽는데 정신을 잃는다. 날 것으로 먹는 것보다 구어 먹는 것이 더 맛이 좋다고 떠들썩거리면서, 아이들의 입과 입은 검게 그을린 재로 물들다. 해녀들이 채취한 미역은 할아버지가 끌고 나온 마차에 가득 실어 동산이나 평평한 잔디밭, 집으로 운반하게 이른다.

집집마다 마당에는 멍석을 깔고 짚을 깔아놓아 바지런한 손질을 통해 잘라 붙이면서 가지런하게 펼쳐놓은 미역들이 따스한 햇살아래 반들반들 말라가고 있다. 해녀가 주문하고 있다.

‘곱게 곱게 잘 말라야 한다. 그래야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한 상군은 미역을 팔아서 이곳저곳에 쓸 근심과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랬다. 해녀 어머니의 미역채취 수입으로 벌어들인 돈은 적게는 학교에 월사금을 내기도 하고 빈약한 가정 경제를 힘겹게 받쳐왔던 삶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양식 미역에 밀려 판로가 막히어 그저 집에서 식용으로 캐어오고 있을 뿐. 게다가 날로 해녀들의 수도 줄어드는 가운데 고령화에 이른다. 바당은 갈수록 갯녹음 현상으로 하얗게 변해가고 환경이 죽어가고 있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낳으실 때, 어머니가 나를 낳으실 때 같은 미역국을 끓여 드셨다. 마을의 온 해녀가 일제히 나서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축제날처럼 흥겹고 활기 넘치는 하루, 제주어촌의 봄맞이 행사였다. 지금은 잔칫날 행사 하나가 빼앗긴 듯 어촌 풍경이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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