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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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환 / 수필가

현관을 나서면서 거수경례로 ‘충성!’하니, 웃으며 한마디 한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혼자 잘난 채 앞서 나가지 말아요” 
산행하는 날이면 아내에게서 늘 듣는 말이다. 
이승이악은 온 세상이 ‘곶자왈’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올법한 거대한 나무들, 집채만 한 돌무더기를 감싸 안고 있는 근육질 모습의 뿌리, ’돌은 낭 으지허곡 낭은 돌 으지헌다’ 라는 제주의 속언을 실감케 한다. 정상을 가려면 몇 개의 내천을 건너야 한다. ‘내 터짐’을 수만 번은 더 했을 내천 바닥 곳곳에는 굵직한 돌들이 금방이라도 굴러갈 태세다. 
아내는 오늘따라 쓸고 닦고 야단이다. 그러건 말건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책을 뒤적이는 나의 발밑까지 빗자루가 쳐들어온다. 땀방울이 맺힌 얼굴을 보는 나는 당황스러워 “좀 쉬면서 하지 않고……”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다 그쳤다.
숲속 깊숙이 들어가니 숯가마 터로 썼던 돌무더기가 보였다. 잠시 회상에 잠겼다. 불현듯 눈앞이 흐릿해지더니, 숯짐을 잔뜩 짊어지고 힘겹게 걸어오고 있는 사람이 어렴풋이 보이는 게 아닌가. 가냘픈 몸매에 땀이 흠뻑 밴 낡은 적삼, 몸빼를 입은 모습이 눈에 익다. 어머니, 어머니가 틀림없었다. 
그날따라 아내는 몹시 피곤했던 모양이다. 씻지도 못하고 잠에 빠져든다. 새벽 두 시에 눈을 떴다. 근래 들어 이런 일이 잦다. 평소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을 달고 살던 아내는 심부전증이란 진단을 받고, 시술을 받은 바 있는데, 그 이후로 잠을 자다가 갑자기 심한 잠꼬대를 하기도 한다.
소설 ’인간 시장’의 작가 김홍신이 ’누군가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하늘에서 좁쌀 한 개가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다가 하필 땅에 거꾸로 박혀있던 바늘 끝에 좁쌀의 씨눈이 탁 꽂히는 그것만큼이나 어렵고 그렇기에 소중하다’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곤히 자는 아내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니 오늘따라 애처롭다. 
연리지. 각기 뿌리가 다른 나무가 서로를 압박하여 껍질이 짓물러 터지면서 둘이 한 몸이 되는 인고의 세월, 처음에는 지극한 효심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훗날 이 말이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백거이의 ’장한가’에서라고 알려져 있다.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약속/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높은 하늘 넓은 땅도 다할 때가 있건만/이 한은 면면히 끊일 날 없으리라.
숨가쁜 일순간이 지나자 앞이 환히 트이며, ‘부풀어 올라’온 숲의 한가운데에 정자가 놓여있다. 북쪽으로는 한라산 능벽이, 동남쪽으로는 표선, 성산, 위미 등 마을과 함께 바다가 저만치 다가온다. 시원한 바람에 온갖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한 오십여 미터를 내려왔을까. 좁은 길옆에 굵은 소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유독 한그루에 눈길이 갔다. 나무 중간쯤 배꼽처럼 생긴 조그마한 공간, 그 속에 황칠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서로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 모습은 우주의 신비가 낳은 ‘인연’임에 틀림없었다. 
이 광경을 보는 순간 인자하신 어머니가 아기를 가슴에 품어 앉은, 가없는 사랑에 전율을 느꼈다.
흘러내린 아내의 이불을 당겨준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자는 저 무심한 얼굴. 둘이 하나 되기 위해 서로를 압박하여 껍질이 짓물러 터진 증명서 아니던가. 서로 다른 사람으로 만났으면서도 오늘까지 견뎌낸 게 참 대견하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직장인으로서 1인 4역을 소화해냈던 철의 여인이 이제 내 옆에서 곤히 자고있는 것이다. 
아내는 친구들과 만나면 못 하는 말이 없다. 그들 대화가 가관이다. 
“너는 아들 몇이니?” 
“아들 둘”
“너는 아들 셋을 키우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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