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와 수미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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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나이 들면서 전에 무심하던 것에 생각이 머무는 버릇이 생겼다. 별것 아닌 것에 사유의 빌미를 대는 식으로 영역을 넓히고 경계를 확장해 가는 그런 모양새다. 단조한 삶에 문양 하나 새기려는가. 결과가 반드시 있다. 그러면서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눈을 번득이게 된다. 이제 저무는 인생길에 웬 일일신(日日新)을 꾀하랴만, 내가 정체되지 않으려 매진하는 것 같아 몸도 마음도 뼈대를 세워 응원에 나선다. 어려워도 멈추면 안되겠다는 심지(心志)를 돋우면 눈앞에 침침했던 기운마저 온데간데 가뭇없다. 모를 일이다.

12월, 마지막 달력 한 장 달랑 남겨놓고는 ‘그래도 한 달 서른 날, 아니 이달은 큰 달이니 31일이네.’ 했는데 주전부리로 땅콩 까먹듯 하다 보니, 이럴 수가 바로 내일이 임인년 마지막 날, 세모(歲暮)다. 몇 년 전, 어느 어른이 나이 들면 매일 과속한다더니 언즉시야(言則是也)라, 실감이 온다. 예로부터 세월의 빠름을 ‘쏘아놓은 살 같다.’느니 ‘인생을 초로’라 비유한 게 단지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겪은 인생 전배(前輩)들의 입에서 나온 경험칙임을 뼈가 저리도록 느낀다. 덧없는 게 인생이다.

연말연시, 겉으론 잠시 그런 감상 따위에서 벗어나 꺼내는 말이겠다. 한 해의 끝, 또 한 해의 시작. 옛사람들은 일 년이라는 한 자락 시간의 시작을 들머리, 마지막을 끝머리라고 한 건가. 일단 한자어를 접어두고 순우리말로 이름을 덧붙였다. 게다가 말 뒤에 숨어 있는 함의를 짚어 보면 마음 끌려 흥미롭기조차 하다.

연말을 하나의 글에 빗대면, 한 해의 마지막 단락이고 구체적으론 그 단락의 결미, 곧 끝 낱말이다. 좋은 글은 함축과 여운을 위해 마지막 단락, 끝 낱말에 집중한다. 굽이굽이 흐르다 나온 구성이 선명한 주제로 제시되는 고비다. 끝이 가파를 수밖에. 왜 썼느냐는 글의 의도를 명확히 할 계제이기 때문이다.

한데 좋은 글을 쓰려는 창작의 강한 의지는 결코 한 작품에 그치지 않는다. 더 좋은 글, 더 잘 쓴 글로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하기 쓰기 위해 다시 새로운 글을 구상해 역량을 다 쏟아붓게 된다. 작가에게 좋은 글, 잘된 글은 소망이요 그가 도달하려는 궁극의 가치다. 새로운 창의를 살려 신작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자신의 작가적 가능성에 도전한다. 그럴진댄 작품은 작가 정신의 개안(開眼)이다. 연말연시를 글쓰기에 포개 놓고 그 둘의 유사성에 무릎을 쳤다. 새로운 시작이 그 끝의 일단락에 닿았을 때라야 가능할 것은 정한 이치가 아닌가.

더 나아가려 한다. 끝과 시작의 잇닿음만으로는 안된다. 한 해라는 시간의 전개는 끝과 시작의 연관성, 그 하나의 맥락을 이룸으로 내일의 삶에 효율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 실현은 일의 끝과 시작 곧 꼬리와 머리를 하나의 구조에서 집대성할 때 가능하다.

수필을 쓸 때 소홀해선 안되는 게 수미상관의 문장법이다. 시작할 때 제시했던 명제를 풀어 놓은 뒤, 끝에 이르러 다시 한번 환기하는 기법이다.

인제 다사다난했던 연말을 맞는다. 이 길목에서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임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되돌아보는 시간이 없으면 진화도 없는 것이 인생이다. 임인년을 돌아보는 자의 눈앞으로 계묘년의 서광이 비칠 것이다. 모두,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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