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날, 위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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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현 수필가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는데 바람의 모서리가 목덜미를 후빈다. 꽤 맵짜다. 찬 기운이 현관을 마주한 벽면, 헐렁하게 걸린 달력에 스쳤나 보다. 맥없이 휘청했다. 두툼했던 무게는 계절과 함께 스러지고 빼곡하게 차 있던 숫자들도 이내 사위어, 몇 개 남은 숫자가 올해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다.

한 해의 저물녘이면 다사다난이란 말을 여느 해처럼 꺼내 쓴다. 올해도 곳곳에 생각지 않은 굵직굵직한 일도 많이 생겼고, 가지가지 변화된 것 또한 많았다. 나라살림이든 가정 살림에서든 규모의 문제일 뿐, 한 해가 열리고 저무는 동안 마주하는 일의 색깔도 각양각색이다. 거기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의 비중 또한 천차만별인 게다.

잠시 앉아 있다가 처진 마음을 풀기 위해 나비 포옹법 자세를 취했다. 양손을 어깨나 쇄골 부위에 팔을 엇갈려 포개 올린 후, 나비의 날갯짓처럼 살짝살짝 번갈아 두드리며 토닥토닥 자신을 위로하고 긍정의 메시지를 반복하며 주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그런지, 정말 그런지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긴장을 완화시키는 심신안정화기법 중 하나란 설명이다.

올해 초, 뭔가를 하나 준비할 일이 생겨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을 물린 채, 반년 정도의 시간을 꼬박 몰두했었다. 딴에는 꼼꼼하게 검토도 했다. 오랜 시간 붙잡고 있던 것을 마무리했다는 홀가분한 생각이 들자 몸도 마음도 긴장이란 이름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던 모양이다. 결과가 좋게 나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득문득 ‘되겠지, 아닐까’하는 기대와 우려가 생각의 말미마다 숱하게 오갔다. 모든 일이 시도할 때는 가능성에 여지가 있다는 전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던가.

결과 발표 있던 날, 사이트에 접속했다. 마음이 쿵쾅거리니 키보드 위의 손까지 떨려 버벅거리기를 반복했다. 결과를 보는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시 찬찬히 보았다. ‘아, 말 걸, 하지 말 걸’…. 긴 한숨과 함께 매달렸던 시간에 이어 쏟았던 노력이, 그리고 기대했던 마음은 끝이 어딘지 모르게 아래로,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멘붕이란 말은 이럴 때 쓰일 게다.

준비할 때의 열정과 기대는 이미 다 사그라지고, 행여 하던 마음은 여지없이 부서져 조각났다. 대책 없이 일 낸 값을 톡톡히 치른 셈이고, 추스르는 데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어떻게든 여기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으로 여기저기 들쑤시다 정보의 바다라는 곳을 휘젓고 다닐 때였다. 이때 찾아 익힌 것이 나비 포옹법이다.

사노라면 크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넘어가는 일도 있고, 감당키 어려워 온몸을 뒤척이게 하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경우에 따라 표면적으로는 다 정리된 것 같은데 뭔가 깊이로 앙금이 남아 감정은 무겁고, 깔끔하지 못할 때도 더러 있다. 늘 하는 일이지만 생각지 못한 변수가 돌출되는 바람에 그에 발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반면 그다지 힘들지 않게 시작한 일이 술술 풀려 의외의 성과에 애쓴 것 이상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괜찮다, 괜찮다고, 시도만으로도 대단했다며 오늘은 스스로를 위로 해야겠다. 한 해를 보내며 하고픈 일에 공들여 봤고 또 애도 썼다. 결과가 좋았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 영역은 또 별개지 않은가. 한 해가 기운다. 하고픈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방전되고 소진되어 지친 내 육신을 위로해야겠다. 다가 올 또 다른 이름의 시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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