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의 평안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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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어린 시절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함덕의 비석거리 동네서 살았는데 그때는 모든 도로가 비포장도로였다. 흙먼지를 날리는 버스가 마을 중심을 지나칠 때면 길거리서 놀던 아이들이 매연에 도취돼 쫓아가곤 했다. 어떤 아이들은 버스에 매달려 한참을 가다가 손을 놓고 달리면서 패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마을을 지나는 버스나 트럭 모두 합해서 하루 스무 번 정도를 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별한 변화가 없었고 새로울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변화도 새로울 것도 없으니 불안할 일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는 불안한 세상을 살아간다.

예측하기조차 어려운 변화가 거의 매일 일어나는 시대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현재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온다. 세계사의 끊임없는 변화가 기대와 희망이 되기보다는 염려와 불안을 몰아오는 듯하다. 그런 변화와 불안 때문이 아니라 해도 인간은 불안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인간의 이성은 합리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런데 우리의 감정은 수시로 비합리적인 욕망에 이끌려 다닌다. 그런 이성과 그런 감정을 동시에 지닌 인간의 삶은 모순의 가능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순결한 삶을 원하지만 우리 영혼은 수시로 어두워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사람이면 누구나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사의 현실에는 대립과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성공과 실패는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한집에서 산다”고 말한다. “행복과 불행은 한 지붕 밑에 산다”고 말한다. 세상 흐름이 어느만큼 안정된다고 해도 인간의 정신 구조 자체가 수시로 불안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염려와 근심과 불안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은 본래 불안한 존재인 것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불안을 올바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에 종노릇할 것이 아니라, 불안을 넘어 영원한 평안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했던 셈이다.

이 시대의 세계사적 불안의 중요한 원인은 저 높은 곳에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으려는 권력자들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그 옛날, 메시야 탄생과 관련하여 베들레헴의 유아 학살을 자행했던 헤롯 같은 권력자들이 바로 그들인 셈이다.

헤롯이 유대의 왕이던 시절에 메시야의 탄생은 생각하기 어려운 낮은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 낮은 곳으로부터 온세상을 향하여 영원하고 진정한 평화를 선포했던 것이 성탄 메시지의 핵심이 되는 셈이다.

한라산 정상 근처에서 드문드문 자라는 나무는 작고 굵고 볼품없이 생겼다. 위로 올라갈수록 세찬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동안에 바람은 잔잔해지고 따스한 온기와 초록의 숲이 다가온다.

마음의 높이를 낮추는 동안에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은 종교인들이나 전문가들의 노하우만은 아닐 듯하다. 마음을 낮추는 방향에서 불안한 시대에 평안을 얻게 되기를…성탄의 메시지로 전하는 바이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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